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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우리 시대의 총리 / 김종구

등록 2009-08-31 21:09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개각 철에는 으레 말이 많은 법이다. 말(言)도 많고 말(馬)도 많다. 이번주로 예정된 내각 개편을 앞두고 언론보도에는 하마평이 무성하다. 신문에 지상발령난 사람 중 많은 사람은 아마도 최종 낙점 과정에서 낙마의 아픔도 겪게 될 것이다. 총리 후보자 지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예 말을 갈아타려는 사람까지 나왔다. 엊그제 갑자기 탈당을 선언한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다.

이번 개각은 예고편부터가 무척 요란하다. ‘개봉 박두! 국민화합·중도실용 내각 출범’이라는 광고가 현란하다. 역대 내각을 두고 방탄내각이니 돌격내각이니 하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화합내각’이 출현할 모양이어서 지레 가슴 부푼 기대도 품게 한다. 그런데 초장부터 분위기가 화합과는 영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개각 뚜껑을 채 열기도 전에 청와대와 자유선진당 간에는 총성과 포연이 자욱하다. 누가 총리에 지명되든 국회 인준 과정도 별로 순탄치 않을 것 같으니 화합은 언감생심이다.

사실 화합이나 중도실용으로 치자면 한승수 총리만한 적격자도 없다. 역대 정권을 넘나들며 노른자위 감투를 계속 차지해온 놀라운 이력부터가 그렇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엣지’야 없지만, 어디에 갖다 놔도 두루 잘 통하는 ‘전천후 모드’만큼 화합을 하기에 좋은 조건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리를 위해서는 이념 따위야 별로 개의치 않으니 실용도 그만한 실용이 없다. 그런데도 총리로서 그가 보인 행보는 화합이나 실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럴 여건도 안 됐고, 본인의 의지와 용기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역할에 스스로 고도제한을 가했다. 그리고 존재감 없는 총리직 연명에 만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심대평 대표 총리 카드는 물건너갔지만 ‘통합형 총리’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청와대는 말한다. 충청 총리론 대신 호남 총리론이 급부상하면서 구체적인 이름도 거론된다. 하지만 그분들이 총리에 지명되면 국민 통합이 저절로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분들의 능력이나 인품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과거에도 지역 안배형 총리가 여럿 있었으나, 화합의 물결이 넘실댔던 기억은 별로 없다. 총리가 정권의 장식품으로 전락한 예도 있다. 지역 안배가 지역 화합을 향한 상징적 조처는 될지언정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인사 탕평책은 정치적으로는 결국 해당 지역의 민심 공략 작전이다. 충청 총리든 호남 총리든, 목적은 그를 통해 해당 지역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들이는 데 있다. 그가 ‘민심의 대표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 문제다. 그래서 화합 총리는 좀더 명확히 말하면 ‘정치 총리’다. 선거를 앞두고 여권이 유난히 통합을 입에 올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만날 자신의 정치적 텃밭에서 사람을 따다가 개각 밥상에 올리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대의명분도 살리고 실리도 챙기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요체다.

하지만 여권이 유권자들의 표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면 배포를 더 화끈히 키웠으면 한다. 그러려면 총리 지명을 단지 정권의 통합 노력을 과시하는 알리바이쯤으로 활용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정도의 술수에 유권자들이 넘어가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화해와 통합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진정성이다. 그 구체적 방향에 대해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친절하게 이미 길 안내도 해놓은 상태다. 총리의 구실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총리는 역시 대통령 하기 나름이다. 우리 시대의 총리를 말하면서 결국은 화제가 대통령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어쩔 수 없는 비극이자 현실이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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