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진 인하대 교수·경제학
지난 3일 국무총리와 6명의 장관을 포함하는 큰 폭의 개각이 발표되었다. 며칠 전의 청와대 개편에 이어, 실용과 화합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중반기 행정을 이끌어갈 진용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번 개각의 핵심은 파격으로 일컬어지는 정운찬 총리의 기용이다.
왜 파격인가? 청와대로서는 4대강 정비, 세제개편, 금융정책, 구조조정 등을 비판하던 정운찬 교수의 총리 기용이 어려울 수 있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정운찬 총리 후보자로서는 보수적 이미지의 이명박 정부에 투신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쓴소리를 해도 필요한 사람은 삼고초려해서라도 기용한다는 인사 원칙을 보여주었고, 정운찬 후보자는 경제 살리기와 사회적 통합의 현안이 강의실 경제학에 안주할 여유가 없게 하였고 이 대통령과의 경제철학에 큰 차이는 없다고 화답하며 총리 제의를 수락하였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파격에 대한 놀라움과 정파간의 이해를 꿰뚫고 민의를 본다면, 아마도 국민들이 참신한 정운찬 내각의 출범에 거는 큰 기대를 읽을 수 있다. 필자가 읽는 국민의 기대는 이렇다.
우선 국민들은 정 후보자가 정당이나 계파간 정략에 휘말리지 않고, 진정한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국무총리는 원래 행정의 자리이지 정치의 자리가 아니다. 정 후보자는 이미 차기 대선과 같은 정치에 뜻을 두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설혹 그렇더라도 더욱더 정치와는 초연하게 맡은 바 국정운영에 전념하여야 한다. 진정한 국민의 소리와 국민의 소리를 빌린 정치적 소리를 구분하는 혜안을 갖기를 바란다.
또한 국민들은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진정한 협력을 보기를 바란다. 우리는 실권이 없는 얼굴마담형 총리도 보았고,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자신을 내세우며 충돌하는 모습도 보았다. 어느 쪽도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대통령과 총리가 화합하면서 팀으로서 국정을 운영하는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기조를 변화시키기도 어렵고, 총리가 재야 시절에 밝힌 소신을 굽히기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서로 상대방의 지혜를 빌려서, 기왕의 기조나 소신의 잘못된 점을 시정하고 좋은 점을 강화시키는 조화와 통합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국무총리가 행정의 자리라고 하지만, 정치에 초연하여도 정치적 도전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자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학자의 정치능력에 대해서 캠퍼스 정치가 가장 어렵다는 말이 흔히 인용된다. 그렇지만, 캠퍼스 정치는 학자로서 물러날 곳이 있다. 그러므로 집요함에 있어서 일반 정치에 비교될 수 없다. 총리의 자리는 물러날 곳이 없는 자리이므로, 초지일관의 뚝심이 필요한 자리이기도 하다. 국민은 유연한 친화력에 덧붙여, 일관된 소신으로 관료조직을 장악하여,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조직된 힘으로서 일관성 있는 행정을 펼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국민은 정 후보자가 지명수락에서 밝힌 사회통합과 경제회복이 가시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정치에서의 계파간 갈등은 정치인에게 맡겨야 하지만, 일반적인 사회통합에 의해서 완화될 것이다. 나라 안에서는 계층간, 지역간의 갈등이 올바른 기준에 따라 해소되기를 바란다. 남북간의 민족갈등도 모처럼의 화해 기운이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서 회복의 기운을 보이는 경제도 늦지 않게 출구전략을 세워서 정상적인 경제운용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정운찬 내각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크고 엄중하다. 정치에 초연하면서도, 대통령과 조화롭게 협력하고, 일관성 있게 관료조직을 이끌어 사회통합과 경제회복의 큰 행정을 이룩하기 바란다.
장세진 인하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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