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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정운찬 총리후보에게 바란다 / 조국

등록 2009-09-06 19:40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이명박 정부는 정운찬이라는 다목적용 ‘꽃놀이패’를 잡았다. 정 총리후보는 이명박 정부가 최근 꺼내놓은 ‘중도실용’ 노선을 더욱 그럴싸하게 만들고 정 후보에게 구애하던 민주당을 “닭 쫓던 개 꼴”로 만드는 한편, 여당 내 대권후보들을 견제하면서 충청권 민심을 잡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정 후보를 “변절자”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정 후보는 애초에 ‘진보파’ 경제학자도 아니었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같은 ‘지사’(志士)도 아니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중도적 자유주의를, 경제적으로 케인스주의를 견지해왔기에 ‘중도실용’ 노선의 강화에 힘을 보태겠다는 것을 비난하기는 힘들다. 이미 ‘준(準)정치인’의 행보를 걸어온 그는 어느 편에 자신의 몸을 싣는 것이 이익인지 경제학적으로 따져보았을 것이다. 그 결과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재집권의 비전과 전망을 내놓지 못하는 민주당보다 이명박 정부가 더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올인’한 것이다.

필자는 정 후보가 자신의 이름값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그가 그간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난폭 역주행’에 브레이크를 걸고 진중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우회전’을 선도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의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아야 하고, 기세등등한 대통령의 ‘가신’과 ‘창업공신’을 아울러야 한다. 사실 현행 대통령제하에서 국무총리는 실질적 권한을 많이 갖고 있지 않으며, 보장된 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강경보수’로 골수까지 무장한 ‘엠비맨’들이 쉽게 입장을 바꿀 것 같지도 않다. 정 후보의 전공인 경제분야만 하더라도 강만수씨가 경제특별보좌관으로, 윤진식씨가 정책실장 및 경제수석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다. ‘공안통치’를 이끌어 온 청와대, 검찰, 경찰, 정보기관 내 ‘공안파’가 인사권자가 아닌 정 후보의 눈치를 볼 리 만무하다.

이제 정 후보는 갈래 길 위에 서 있다. 첫째는 4대강 사업, 금산분리, 감세정책 등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접고 이명박 정부의 ‘얼굴마담’이 되는 길이다. 둘째는 정권 내부의 투쟁을 감수하면서 국정운영의 방향을 진짜 ‘중도실용’ 쪽으로 몇 걸음 옮겨 놓는 길이다. 전자는 매우 쉽고, 후자는 매우 어렵다. 정운찬씨는 학자와 교수로서 명망을 쌓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최종적인 역사적 평가는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의 핵심 책임자로서 그가 어떠한 역할을 하였던가에 달리게 될 것이다.

지면 관계로 필자는 정 후보가 국무총리로 부임하였을 때 즉각 해야 할 일로 딱 두 가지만 건의하고자 한다. 첫째는 용산참사의 해결이다. 사건 발생 7개월이 넘도록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는 장례도 치르지 못한 다섯 구의 시신이 있다. 종교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연일 정부의 사과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지만, 정부는 사인간의 일일 뿐이라며 외면하고 있다. ‘공안통치’의 정당성이 훼손될까 두려운 것이다. 용산참사 해결 없는 국민통합이란 헛소리에 불과하다. 용산 제4구역을 방문하는 국무총리의 모습을 기대한다.

둘째, 비정규직법의 충실한 집행이다. 최근 발표된 노동부의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조사는 그간 노동부, 여당, 보수언론이 주장해온 ‘100만 해고대란설’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경제학자인 그는 이미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가 중 최고 수준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은 ‘유연성’ 외에도 ‘안정성’이 중요함도 알고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수립에 앞장서는 국무총리를 보고 싶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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