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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실세’ 기무사에 흔들리는 국방부 / 김종대

등록 2009-09-07 21:55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스무살이 넘어서도 성장호르몬이 계속 분비되면 말단비대증이라는 병에 걸린다. 성장이 멈춰야 되는데 손과 발이 흉측하게 계속 자라는 것이다. 지금의 국군 기무사령부가 바로 그러하다. 한국의 기무사령부는 전세계 민주국가의 방첩부대 중에서 비교대상을 찾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 방첩보안부대다.

유럽의 경우 최대 600명을 넘어서는 보안부대가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의 경우 그 여덟배가 넘는다. 기무사령부의 대령급 이상 고급장교 수는 1군사령부나 3군사령부 같은 야전군사령부보다 많다. 전군의 간부인력 20여명 중 한 명이 기무요원이라는 말도 있다. 전투를 하지 않는 지원부대 하나가 이렇게 많은 인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무사의 업무영역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사 기능은 헌병과 중복되고 방위산업 비리 예방활동은 국가정보원과 중복된다. 최근 기무사에 창설된다고 하는 사이버방호사령부는 국방부 정보본부 예하의 정보사령부가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사안일 뿐만 아니라 국정원과 경찰이 이미 하고 있는 업무들이다. 우리 군은 국방개혁을 통해 군병력 17만명을 줄여야 할 판이다. 긴축과 절감, 업무통합이 요구되는 시기에 기무사 홀로 몸집을 불리겠다는 발상이다.

국방부 내에서 예산 갈등으로 장관과 차관이 티격태격하던 8월 중순, 김종태 기무사령관은 기무사에 창설될 ‘사이버방호사령부’의 인원을 늘려달라고 이상희 국방부 장관에게 요구했다. 국방부 산하기관들이 일률적으로 20~30%의 인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청와대 지침에서 기무사가 제외되는 것은 물론이고 거꾸로 150명의 인원을 더 늘려달라는 기가 찰 요구를 국방장관은 당연히 거절했다.

사이버방호사령부는 소장급 지휘관과 대령급 6명이 편제된 500명 규모의 거대조직이란다. 그러자 이번에는 국방부에 나와 있는 기무부대장이 국방개혁실장을 찾아가 ‘왜 인원 증원을 수용하지 않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감정이 격앙된 양쪽에서 욕설과 고함까지 터져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군 안팎에서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이해가 안 될 것도 없다. 실세 국방차관이 국방장관을 제치고 국방예산을 주무르더니 이번에는 실세 기무사령관이 나서서 국방장관을 압박하는 상황이야말로 법과 시스템이 아니라 인맥으로 통치하는 현 정부의 색깔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 기무사령관은 지난 정부에서 모함으로 억울한 일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랬던 그가 정권이 바뀌자 정권 실세와의 막강한 인연을 배경으로 자신을 탄압했던 그 기관의 수장이 되었다. 대통령에게 단독보고를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움켜쥔 현 기무사령관에게는 모함에 시달리면서도 지조를 지킨 청렴한 장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신원조회’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군 인사에 개입하고, 군 내부 좌익분자 색출과 불온문서 차단이라는 공안의 논리를 앞세우는 정권 보위부대의 장에 더 가깝다는 게 대다수 젊은 장교단의 정서다. 군의 정치적 중립 훼손도 우려된다.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서, 기무사가 나라의 안보를 걱정한 나머지 대응이 소홀한 사이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려 했다면 다른 기관이 그것을 잘하도록 도와주면 될 일이다.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 시끄러운 시기에 기무사가 굳이 안 하던 업무까지 하겠다며 군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은 권력지향성 호르몬이 과잉 분비되어 나타난 말단비대증세가 아닌가?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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