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보금자리주택의 함정 / 정남기

등록 2009-09-07 21:57

정남기 논설위원
정남기 논설위원
서울과 대전의 아파트 값 차이는 얼마나 될까? 105㎡(32평)형을 보면 서울 강남이 9억~14억원, 대전의 신개발지 노은지구가 2억~2억4000만원. 대략 5~6배 차이다. 그럼 건축비는 어떨까? 어디에 짓든 3.3㎡당 300만~350만원을 벗어나지 않는다. 강남이라 해도 105㎡형 아파트 건축비는 1억200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얘기다. 차이는 땅값에서 나온다. 분양·광고비 등이 들어가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땅값이다.

정부가 짓는 보금자리주택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아주 간단하다. 분양가의 70%는 땅값이다. 값싼 땅만 확보하면 누구나 반값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게다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라는 좋은 땅이 있다. 이것만 싸게 수용하면 만사형통이다. 그뿐인가. 용적률을 올려주면 분양가는 내려가고 공급량은 늘어난다. 실수요자들도 값싼 아파트가 쏟아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안 했을까? 당국자들이 몰랐을까? 그런 건 아니다. 해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 분양가는 싸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이다. 차익은 당첨자가 가져가고 전매제한 기간이 끝나면 집값은 주변 시세로 올라간다. 전매제한을 통해 임시로 집값을 억누르는 것일 뿐이다.

보금자리주택이 집값 안정에 기여하려면 기존 주택시장을 압도할 만큼 많은 물량의 값싼 아파트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수도권에 그럴 만한 땅은 없다. 이런 식으로 보금자리주택을 계속 짓다 보면 수도권 그린벨트는 얼마 못 가서 바닥이 난다.

이런 정책은 오래갈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안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다음 대통령은 당장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30년 넘게 고이 간직해온 그린벨트만 없애고 주택 정책은 몇 년 뒤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오히려 그린벨트 땅값을 끌어올려 부동산시장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이 더 높다.

분양가를 낮추고 공급을 늘리면 집값이 안정될 것이란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분양가는 어떤 과정을 거치든 기존 시세에 수렴하게 돼 있다. 분양 방법에 따라 시세 차익을 가져가는 사람이 다를 뿐이다. 물론 지속적인 주택 공급은 필요하다. 1인가구 증가 등 사회적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적정한 수준의 공급은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전국의 공동주택이 780여만가구인 상황에서 연간 25만~30만가구씩 공급되는 물량이 전체 시세를 좌우할 수는 없다.

집값 안정의 열쇠는 분양시장이 아니라 기존 주택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있다. 또 기존 주택시장의 수급을 좌우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금리 등 금융시장의 상황이다. 실제로 금리가 계속 낮아지면 아무리 공급을 많이 해도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그때는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를 강화하거나 금리 또는 보유세율을 올릴 수밖에 없다.

최근의 집값 상승세도 공급 부족보다는 수요 증가에 원인이 있다. 저금리로 시중자금이 넘쳐나고 부동산 규제가 풀리면서 매수세가 급증했다. 참여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금리로 인한 수요 증가에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공급 정책도 듣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늦게나마 수도권 총부채상환비율 강화에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보금자리주택 32만가구 공급의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요 증가 원인을 차단하지 않고 집값을 잡을 수는 없다. 오히려 개발 호재로 인식돼 땅값을 들썩이게 하거나, 거액의 토지보상금이 새로운 부동산 매수세를 유발하게 된다. 물론 그린벨트 해제가 어려워지는 순간 보금자리주택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시한부 정책이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