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한표 언론인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일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아무도 방송을 장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하다. 우선,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부분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3대 지상파 방송사 중 <한국방송>(KBS) 이사진과 <문화방송>(MBC)의 지배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등 두 방송사의 이사진은 정부가 선임한다. 주관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방통위 상임위원 5명 중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나머지 3명은 국회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그중 1명은 집권당 몫으로 배정되어 있다. 이런 절차에 따라 두 방송사의 새 이사회가 최근 구성되었다.
지난해 2월 취임 후 이 대통령은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발을 누르고 측근 중의 측근인 최시중씨를 방통위원장 자리에 앉혔다. 대통령이 방통위를 통해 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이 구조는 이미 작년 8월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해임하는 과정에서 목표를 향해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방통위는 1단계로 한국방송 이사들 중 정 사장 해임을 반대하는 신태섭 이사를 순환논리를 구사하여 해임했다. 신 이사의 근무처인 동의대가 학교의 허가 없이 한국방송 이사직을 수행했다는 등의 이유로 그를 교수직에서 해임했다. 방통위는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한국방송 이사직에서 해임하고 보궐이사를 선임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나중에 동의대의 교수 해임도, 방통위의 보궐이사 선임도 무효라고 판결했다.
정 사장 해임은 무리한 과정을 거쳐 개편된 이사회가 결의했다. 이사회는 정 사장의 업무상 배임 혐의를 해임 사유로 들었지만, 최근 법원은 정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일이 문화방송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기가 1년 반이나 남은 엄기영 사장을 향한 방문진 이사회와 방통위의 은근한 압력은 작년 한국방송 사태의 초기 단계를 연상시킨다.
반면에 대통령 말의 후반부인 “아무도 방송을 장악할 수는 없다”는 대목은 진실에 가깝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장악은 할 수 있지만,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는 없는 것이 방송이라는 말이 된다. 정권이 바뀌면 두 방송사 경영진도 임기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바뀌던 시절이 있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경영진이 재신임 여부를 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다.
이런 관행을 작년 정연주 사장이 깨뜨렸다. 그는 온갖 압박을 견뎌냈다. 먼지털기식 검증이 그를 샅샅이 뒤졌으나 약점이 드러나지 않자 감사원까지 동원되었다. 국세청과의 세금 분쟁에서 정 사장이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임으로써 당연히 더 돌려받을 수 있는 세금을 못 받게 되었다는 감사 결과를 가지고 업무상 배임 혐의를 건 것이다.
방송이 정부 마음대로 잘 움직이지 않았던 데는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았다는 개인의 특성이 작용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이미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국방송에서 벌어진 사장 교체를 원인무효 상황으로 되돌려버린 법원의 소신 있는 판결들은 정부의 방송 장악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의 산물이다. 아무도 방송을 장악할 수 없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선언을 넘어 실제 상황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성한표 언론인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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