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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총리 후보자의 부동산 소신은? / 김윤상

등록 2009-09-14 21:15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수능시험에도 나올 만한 문제를 하나 내 보자.

[지문] 자유시장경제 원리는 19세기 말에 왈라스(L. Walras)가 창안한 ‘일반균형이론’이라는 정교한 분석틀을 가지고 있다. … 자유시장경제 제도에서 소유권은 근본적으로 노동과 자본을 중심으로 성립된다. 왈라스의 표현을 직접 빌리자면 “인류는 토지를 영구적으로 소유하지만 현 세대는 다만 토지의 사용자일 따름이다.” 그에 따르면 희소한 토지는 당세대에서만 임대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되, 사용 후에는 모두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토지공개념은 자유시장경제 제도와 배타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왈라스가 설정한 자유지상 경제제도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된다.

[문제]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왈라스의 자유시장경제 원리와 조화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당연히 ‘조화되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왈라스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총리지명자 정운찬씨는 어떨까?

정 지명자의 평가는 스스로 쓴 글에 나와 있다. 위의 지문은 그의 칼럼집 <한국 경제 아직도 늦지 않았다>에서 인용한 것인데, “토지소유가 자기 노동에 기초한 대가의 획득이기보다는 불로소득의 원천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적고 있다. 즉 정 지명자는 토지공개념에 역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자유시장경제의 전제조건을 부정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렇다면 정 지명자가 총리로 재임하면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되돌릴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은 ‘그렇게 못할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정 지명자가 아무리 뛰어난 경제학자이고 교육자라고 해도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해 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으로 상당한 재산을 일구면서 살아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둘째로, 대통령 옆에는 부동산 정책을 후퇴시킨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특보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내에 경제특보와 같은 참모를 두는 목적은 총리 이하 각 부처의 정책을 대통령을 위해 걸러내는 데 있다. 그러니까 정 총리가 진정한 자유시장경제를 하기 위해 부동산 정책을 수정하려고 해도 특보가 제동을 걸고 나설 것이다.

셋째로, 한나라당과 수구언론과 정부 내 ‘건설족’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너무나 뻔한 이야기니까 더 언급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정 지명자 자신이 진심으로 왈라스의 사상에 동조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강만수 경제특보도 한때 토지공개념에 깊이 공감하는 다음과 같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땅과 물과 공기는 조물주가 창조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인데 물과 공기는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면서 ‘왜’ 땅만은 가는 곳마다 임자가 정해져 있을까. 땅 때문에 인간을 죽고 죽이며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고 얼마나 많은 불평등의 속박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한을 삭이며 한숨을 쉬어야 했던가. 요지의 땅 몇백 평을 물려받은 사람은 자손대대로 걱정 없이 잘사는데 땅 한 평 물려받지 못한 사람은 평생 일하고도 변변한 집 한 채 마련 못하는 실정이다.”(<중앙일보>, 1997년 3월5일)

강만수 경제특보는 이 칼럼에서 토지공개념의 원조 헨리 조지를 언급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선례로 볼 때 혹 정 지명자도 ‘칼럼은 칼럼이고 정책은 정책’이라고 발뺌할 수 있다. 지켜볼 일이다.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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