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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통일부 장관의 말 / 안문석

등록 2009-09-15 21:29

안문석  한서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안문석 한서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좀 넘은 시점이었다. 그다지 하는 일 없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보좌관이 있었다. “왜 저런 사람을 계속 곁에 두고 있습니까?” 가까운 참모들의 불만 섞인 질문에 아이젠하워의 답은 간결했다. “저 친구는 나한테 ‘글쎄’(well)라는 걸 가르쳐줬어.” 말하기 전에 잠시 생각을 할 때 흔히 쓰는 말이 ‘웰’이다. 명쾌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젠하워는 “예스”(Yes), “노”(No)를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그 보좌관이 잠시 시간을 두고 말하라는 얘기를 해준 것이다. 어디 대통령뿐이겠는가. 공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황강댐 방류를 놓고 “의도를 가지고 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많이들 놀랐다. 공격의 의도를 가지고 했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이 자신들의 방류를 인정한 만큼 방류 행위 자체가 의도적이라는 이야기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영 어설프다. 그런 의미였다면 방류라는 말 자체가 일부러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니까 거기에 다시 “의도를 가지고”라는 말을 쓰면 안 되는 것이다. “실수는 아니고 북한이 방류를 한 것은 분명하다” 정도로 말을 했어야 한다. “의도를 가지고 방류를 했다”는 말은 결국 피해를 유발하거나 공격을 할 생각으로 북한이 물을 흘려보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수공(水攻)을 했다고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고 오히려 수공으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하는 모습이다. 도대체가 어수선하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신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2001년 이후 일곱 차례나 사전 통보 없는 방류가 있었고, 이는 남북 협의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 차원의 정책 재검토와 대화 추진 방안은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현 장관은 얼마 전에도 북한의 유화적인 태도를 두고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 전술적 변화”라고 말했다. 정확한 분석일지 모른다. 하지만 장관은 논객이 아니다. 그저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다 말하면 안 된다. 북한에 구걸할 필요는 물론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분위기를 걷어차 버릴 이유는 더욱 없다. 밀 때는 밀더라도 당길 때는 또 당겨야 한자리에 앉을 기회도 올 것이다. 북한의 유화적인 태도는 더 활성화시켜서 남북관계가 진전되도록 하는 것이 통일부 장관의 소임일 것이다. 북한의 유화적인 모습을 보고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논객의 냉소적 어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 민간 채널을 통해 왔으면 어떤가. 북한 노동당의 비서, 통일전선부장이 왔으면 대화의 기회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 실용적인 접근일 것이다. ‘사설 조문단’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이념적 틀에 얽매이는 모습이다. 저명한 정치학자 토마스 리세카펜은 국가간 협의가 잘되려면 민간 사이의 초국가적인 연대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했다. 남북한처럼 특수한 정치환경에서는 민간 채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잔뜩 경색된 국면에서 뜬금없이 군축협상을 제안하고, 남북간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의하는 것은 그저 제안을 위한 제안일 뿐이다. 남북관계에서는 면밀한 전략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작업만이 의미가 있다. 그러려면 먼저 신뢰가 쌓여야 한다. 말조심은 그래서 꼭 필요하다.

안문석 한서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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