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요즘 우리 주변에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 적지 않다. 개각 인사청문회를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반 시민이나 노조원들에게는 “실정법 위반” 운운하며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정부·여당이 지도자 될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관대하다. 위법 사실이 확실한데도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한마디로 “너는 법대로, 나는 멋대로” 식이다.
미디어법과 관련해서도 정부·여당은 자기들 ‘멋대로’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국회에서의 입법 절차상 하자가 분명한 미디어법을 놓고 아직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지 않았는데도, 정부·여당의 후속조처는 거침없이 계속되고 있다.
미디어법 통과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정부·여당은 이제 ‘종편 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일관된 원칙이나 합리적 기준도 없다. 모든 후속조처가 대기업과 거대 신문사의 참여를 전제로 한 ‘종편 살리기’에 집중되어 있다. 종편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기업들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가 하면, 종편 채널을 황금 채널대에 편성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방통위가 이번에는 아예 공익채널까지 줄이기로 결정했다니 이 역시 종편 살리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용인즉슨 방통위는 최근 분야별로 1개 이상의 채널을 의무재송신하도록 되어 있는 공익성 방송 채널을 기존 6개 분야(시청자 참여·사회적 소수 이익 대변, 저출산·고령화 사회 대응, 문화예술 진흥, 과학기술 진흥, 공교육 보완, 사회교육 지원)에서 3개 분야(사회복지, 과학·문화진흥, 교육지원)로 줄인 것이다. 의무재송신해야 할 공익채널을 그만큼 줄인 것이다. 의무재송신을 하도록 되어 있는 종편 채널을 늘리려다 보니, 다채널 유료방송사업자들의 반발이 뻔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결국은 공익채널을 줄이게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공익채널’은 줄인 만큼, 종편 ‘사익채널’은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시민을 위한 공원을 없애고 그 자리에 시장판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과연 이런 일이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강화하고 보호해야 할 방통위가 해도 되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있을 방송 환경 변화를 고려하면 국내 방송시장은 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늘어나는 방송사들이 사익 추구를 위해 지나친 시청률 경쟁에 매몰되다 보면 방송의 상업성과 선정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지만 시청률 낮은 채널이나 프로그램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만큼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정책 당국이 공익채널을 선정하여 일정 비율 이상 의무재송신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사익채널’이 들어설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오히려 의무재송신해야 할 ‘공익채널’을 줄이고 있다. 이 역시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대기업과 거대 신문사에 종편 채널을 허용하고 이를 억지로 살리려다 보니 계속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살릴 것은 죽이고 죽일 것은 살리는 꼴이다. 한참 잘못된 처방이다.
지금 정책당국이 해야 할 일은 공익채널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사익채널인 종편의 의무재송신 규정을 없애는 일이다. 그래야 시장이 살아나고 시민을 위한 공원도 회복될 수 있다. 방송시장과 사회 전체의 건강을 고려하는 제대로 된 정책이 아쉽다.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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