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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안 본 지 / 우재욱

등록 2009-09-24 17:56

의존명사 ‘지’는 어떤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동안을 나타낸다. 여기서 ‘어떤 일이 있었던 때’는 마지막으로 있었던 때이다. “서울에 가본 지 오래되었다”고 하면 서울에 마지막으로 가본 때로부터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에 긍정형과 부정형이 혼동되어 쓰이고 있다. “서울에 안 가본 지 오래되었다”도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필자에게 ‘그런 신문 안 본 지 오래됐습니다’라는 가시 돋친 말을 던지곤 했다.” 중앙 일간지 칼럼에서 잘라온 문장이다. ‘그런 신문 본 지’라고 해야 할 것을 ‘그런 신문 안 본 지’라고 하고 있다. 긍정형과 부정형이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신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0일 전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런 신문 본 지 200일 됐습니다’ 하면 정확한 표현이다. 이 말을 부정형으로 하여 ‘그런 신문 안 본 지 200일 됐습니다’ 하면 왜 잘못된 표현일까? ‘안 본 지’라고 했기 때문에 안 본 마지막 날로부터 셈해야 하는데, 안 본 마지막 날은 어제다. 따라서 ‘안 본 지’ 하루밖에 안 된다. ‘본 지’ 오래된 것이지 ‘안 본 지’ 오래된 것이 아니다. 흔히 화용론을 들먹이면서 이런 잘못을 덮으려 하는데 안 될 일이다. 물론 화용론에서는 잘못된 말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잘못된 말이라는 전제 속에서, 잘못된 말이라도 실제로 어떻게 소통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지, 잘못된 말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우재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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