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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집시법을 전면 개선하자 / 김종철

등록 2009-09-24 22:05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
2009년 9월24일은 한국 민주화 역사에 또다른 이정표가 세워진 날로 기억될 만하다. 헌법재판소가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그 위반행위를 형사처벌하는 집시법 규정에 대한 1994년의 합헌 판단을 바꿔 이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의 헌법적 의의는 매우 크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하고 불안정을 심화시켜 왔던 야간집회의 정당성을 둘러싼 경찰 및 검찰과 시민 사이의 헌법투쟁이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정신에 입각한 시민의 승리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의 발단이 된 2008년 촛불집회만 하더라도 집회 주최 및 참가자들에 대하여 무려 1000여건의 기소가 이루어졌는데 그중 상당수가 야간집회 금지규정을 적용한 것이었다. 이 중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고 이번 사안의 원인이 된 위헌법률 제청 때문에 1심에 계류중인 경우도 있다. 야간집회 금지규정의 위헌제청을 둘러싸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신영철 현 대법관이 부적절한 재판 개입 사태를 초래하여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번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그동안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원천봉쇄하거나 과잉단속하여 어렵사리 쟁취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헌정 위기를 초래한 이명박 정부의 왜곡된 법질서 강화 정책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서 아쉬운 대목은 헌재가 불합치한 규정을 2010년 6월30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헌법에 위반됨에도 야간집회의 전면 허용이 초래할 위험을 입법자가 합리적으로 개선할 때까지 법 적용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처럼 위헌법률의 잠정 적용을 허용하게 되면 위헌법률에 의한 형사처벌을 일정 기간 용인하게 되어 실체적 적법절차나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문제점이 있다.

국회는 최우선 과제로 이번에 불합치된 야간집회 규제 규정을 개정하여 법적 혼란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더불어 이번 결정의 취지를 반영하여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경찰권의 자의적 집행을 가능하게 했던 집시법상의 독소조항도 개정하여야 한다. 그동안 경찰이 악용하여온 잔여집회 금지를 가능하게 한 집시법 제8조 제1항 단서, 동일장소 중복집회 금지규정을 개정하여 경찰권의 자의적인 집회규제를 입법적으로 통제하여야 한다. 나아가 이미 지난번 헌재의 합헌 결정을 받기는 하였으나 집회신고 의무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행정벌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정권교체 이후 자의적으로 야간집회 금지규정을 해석하여 야간집회를 원하는 시민을 무리하게 연행하고 집회 개최를 방해하여온 경찰은 그동안의 과오를 반성하고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헌재가 단순위헌이 초래할 위험을 고려하여 잠정 적용을 허용한 취지를 고려하여 원칙적으로 야간집회를 허용하되 사후적 법위반이 확인되는 경우에만 엄격히 법을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집회 개입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정립하고 원칙적으로 집회를 원천 봉쇄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검찰도 무리한 집시법 적용에 대해 성찰하고 위헌인 법률에 기초한 공소를 취소하여야 한다. 또한 국민도 어렵사리 쟁취한 합법적 공간을 상실하지 않도록 집회가 무질서하게 폭력화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이번 헌재의 야간집회 금지규정에 대한 불합치 결정이 왜곡된 집시법 질서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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