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영 법조팀장
이른바 권력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은 아래의 체크리스트를 따져보기 바란다.
1. 불철주야 일하지만 여론은 우리한테 우호적이지 않다. 2.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단한 일을 하시네요” 하며 나를 치켜세우지만 표정에 꺼림칙함이 묻어날 때가 있다. 3. 친구나 가족한테서 “당신들 왜 그러냐”는 면박을 당해 봤다는 동료도 있다. 4. 우리 조직은 사조직이 아닌데도 ‘우리’라는 의식이 유달리 강하고 배타적인 것 같다. 5. 수장이 바뀔 때마다 ‘변화와 개혁’을 외치지만, 내성이 생겨 별 감흥이 없다. 6. 우리보다 센 데는 없는 것 같다. 청와대만 빼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란 말도 생각난다. 7. 밀리겠다 싶으면 조·중·동이 우리를 변호하기도 하는데, 좀 쑥스럽기도 하다.
힘깨나 쓰는 곳이면 네댓 개 항목에 동그라미를 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 동그라미를 그려넣을 만한 기관도 있다. ‘최고 권력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곳, 곧 검찰이다.
검찰이 최고 권력기관의 영예를 얻은 데에는 시대적 맥락, 다른 권력기관들의 구조적 한계나 상대적 몰락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억압적 통치기구’의 최고봉 자리에서는 헌병경찰, 경찰, 엘리트 군인집단,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조직과 역할을 분담하며 영광의 시기를 보냈다.
이런 기관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전국적 조직망 등 기반이 있어야 한다. 또 막강한 권력 행사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힘은 자의적이고 탈법적이기까지 한 행태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최고 권력자의 ‘간택’이다. 독재정치 세력이 숙주인 셈이다.
지금 검찰 권력이 어느 때보다 높은 정점에 선 것에는 필연성이 분명히 있다. 문민화 이후 수사-기소-공소유지의 일관 기능을 갖춘 검찰은 최고 권력기관으로 부상하는 데 최적 조건을 갖춘 집단이 됐다. ‘비밀경찰’이 활개치는 후진국형 억압체제는 필요성이 반감했다. 제복 착용 기관, 음산한 분위기의 정보기관은 민주화시대와 어울리지 않았다. 문민시대에는 희끔한 얼굴에 넥타이를 맨 검사들이 보기에도 제격이었다. 여기에 검찰과 한 몸이라고 할 법무부가 형 집행을 맡고 있다. ‘감시와 처벌’에 관해서라면 이처럼 강력하고 포괄적이며 효율적인 기구는 없다.
검찰 권력의 성장은 외연도 확장시켰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 출신이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 국가정보원장과 국정원 차장 자리를 싹쓸이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검찰 권력이 보수 정치세력과의 동맹에서 하위 파트너쯤은 된다고 볼 여지도 있다.
관심은 검찰 권력의 이런 지위가 영원할 것이냐로 모아진다. 검찰 권력의 부상에 필연성이 개재했듯 그 하강도 필연인 것 같다. 제국의 최전성기에 황혼이 어른거리기 마련이다. 판사로의 전직을 바라는 검사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물론 정치세력 판도나 검찰의 조직력, 검찰 출신들의 사회적 배치는 선뜻 검찰 권력의 약화를 점치기 어렵게 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내외부의 민심 이반은 아무리 튼튼한 성곽도 의미 없게 만드는 법이다. 권력기관 위의 권력기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은 견제와 균형이 생명인 민주주의 체제와 양립하기 어렵다.
검찰 권력은 연착륙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선량하고 분별력 있는 이들한테서 영 ‘취급’을 받지 못하는 옛 최고 권력기관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검찰은 법치주의가 뿌리내리지 않으면 일류 국가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검찰 권력이 한국만큼 독점적이고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선진국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이본영 법조팀장ebon@hani.co.kr
검찰 권력은 연착륙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선량하고 분별력 있는 이들한테서 영 ‘취급’을 받지 못하는 옛 최고 권력기관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검찰은 법치주의가 뿌리내리지 않으면 일류 국가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검찰 권력이 한국만큼 독점적이고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선진국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이본영 법조팀장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