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용산사건에서 ‘수사기록 중 무엇을 증거로 제출할지는 재량’이라는 검찰의 주장은 그 자체로 타당하다. 하지만 이것은 검찰의 정보공개 의무와는 관련이 없다. 증거제출은 법원에 하는 것이고, 정보공개는 소송 상대방에게 하는 것이다. 검찰이 주장하는 ‘재량’은 증거제출에 적용되는 것이지 정보공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보공개는 상대방의 재판청구권 보호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소송을 통해 법에 호소해야 한다. 그러므로 소송 당사자들이 증거제출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당사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최우선적 공익이 된다. 이에 따라 각 당사자는 사건에 관련되어 다른 당사자나 관련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데 이 제도를 미국에서는 ‘디스커버리’(discovery·증거개시)라고 하며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있다. 이 절차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정보의 성격상 보안이 요구되더라도 최소한 소송 당사자들에게는 반드시 공개되도록 한다. 당사자들에게 비밀유지 의무가 있을 뿐이다.
이런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상대방이 이를 증거로 제출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개 거부에 대한 제재는 해당 정보가 증거로 제출되어 승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무산되는 것에 대한 보상이어야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 정보공개 거부에 대한 제재는 공소기각(형사)이나 상대방 주장 사실의 인정(민형사)이다.
그런데 용산사건에서 검찰의 정보공개 거부에 대해 법원은 ‘그럼 그걸 증거로 제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재를 하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검찰이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을 증거로 제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제재가 될 수 없다.
법원이 이렇게 무기력을 보이는 것은, 형사소송법 제266조의4제5항이 정보공개 거부에 대한 벌칙으로 증거제출권 박탈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시된 대로만 한정된다면 정보공개 거부에 대한 제재는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고 정보공개 의무는 실질적으로 없는 것이다.(짐작건대 현행법은 제17대 국회가 미국 연방형사소송규칙 제16조를 완전히 오독하면서 참조한 결과물인 것 같다.) 정보공개 의무가 없으면 최근 피고에게 불리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공소가 기각된 미국 사례도 무의미해진다. 검찰이 ‘미공개 기록에는 피고에게 유리한 내용이 없다’고 해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법’이 이렇게 문언 그대로만 해석된다면 법치국가의 최우선 공익인 ‘소송 당사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근거로 소송을 준비할 권리’는 없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정보공개를 의무화하지 않는 조항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조항이지 형사입법적 부작위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용산사건에서 법원은 합헌적 해석을 하여야 한다. 법 어디에도 증거제출권 박탈만이 유일한 제재라고 되어 있지 않다. 법원이 직권 증거조사를 할 수도 있고, 검찰이 명령을 어기고 있으니 최소한 질서유지권이라도 발동하여 검찰의 변론을 중단시킬 수도 있고, 또는 최소한 공개거부 사유가 타당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미공개 기록을 판사 스스로라도 열람할 수 있다. 머리가 복잡하면 아예 재판을 중단하고 형소법 제266조의4에 대해 위헌제청을 할 수도 있다.
또는 국회가 최근 무소속 정동영 의원이 발의한 형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용산사건에도 적용되도록 하면 된다. 법치주의를 믿는다면 여야 모두 힘을 합쳐 통과시킬 일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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