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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성공한 불매운동은 불법이다? / 차태훈

등록 2009-10-05 21:56

차태훈  한국외대 경영학부 교수
차태훈 한국외대 경영학부 교수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의 광동제약 불매운동에 대하여 검찰이 언소주 대표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조중동 폐간을 목적으로 불매운동을 시작하여 이를 빌미로 협박하고 그 결과로 원치 않는 광고를 게재하게 하였으니, 이는 기업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침해하였다는 것이 이유다. 검찰의 논지대로라면, 이제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모든 불매운동은 필연적으로 불법일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이는 소비자 권리에 대한 실로 중대한 제약이다.

첫째, 불매운동이 위협적인가? 불매운동은 필연적으로 위협을 수반한다. 이는 불매운동의 정의에도 명백하다. 불매운동의 교과서적인 정의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집단이 특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개별 소비자들에게 특정의 구매를 하지 말도록 독려하는 시도”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협을 불법으로 간주한다면, 모든 불매운동은 불법의 범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불매운동이 위협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자유경제체제의 대량생산이 빚은 공급초과 때문이다. 예컨대 광동제약 제품 외에도 비타민음료는 이미 넘쳐나고 있다. 광동제약에 불만이 있으면 소비자는 얼마든지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기에 광동제약에 현실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대상 기업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시작부터 실패한 불매운동일 뿐이다.

둘째, 불매운동의 사유가 논의의 대상이 되는가? 소비자 불매운동은 사실상 소비자 불만족의 행동적 표현 가운데 하나다. 불만족한 고객의 가장 적극적인 의사표현은 불매, 즉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다. 집단적 수준의 불매가 바로 불매운동의 형태를 띠게 되며, 다수가 참여할 경우 대상 기업에는 매출이나 이익상의 불이익, 심지어는 주가 하락과 같은 부가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불만족 사유가 다양한 만큼 불매운동의 이유 역시 초창기 가격적인 불만에서 시작하여 사회적인 이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1990년대 펩시콜라가 미얀마에 진출하자 미국 소비자들은 미얀마의 인권문제를 이유로 펩시 불매운동을 시작하였으며, 결국 펩시는 미얀마에서 철수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포츠조선>의 선정적인 광고게재에 항의하기 위하여 스포츠조선의 일반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이미 시도한 바 있으며, 당시 스포츠조선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셋째, 불매운동이 기업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침해하였는가? 언소주의 불매운동을 광동제약이 받아들일 것인가의 여부는 순수하게 광동제약의 의사결정일 뿐이다. 만약 불매운동의 참여자들과 광동제약 제품의 현재 및 잠재 구매자가 일치한다면, 광동제약으로서는 불매운동으로 손실을 입을 여지가 매우 많다. 따라서 마케팅 전략의 관점에서 불매운동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광동제약으로서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실제 광동제약이 불매운동 참여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그게 광동제약의 이해관계와 방향을 같이했다는 것이지, 기업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침해했다는 주장의 근거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소비자 불매운동은 전적으로 소비자 불만족에 기인하며, 모든 기업은 소비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고객에게 원하는 것을 제공해서 만족시켜라”라는 마케팅 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불매운동은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이며,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자유경쟁의 경제 및 자본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드는 일이다. 검찰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건전한 자본주의를 무너뜨리지 말기를 바란다.


차태훈 한국외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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