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청와대 행정관이 기업들에 아이피티브이(IPTV) 사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설립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코디마)에 100억 또는 50억씩의 거액의 기부금을 출연할 것을 독려했다 해서 말썽을 빚고 있다. 이들 기업은 아직 이익을 발생시키지 못한 것은 물론 사업 전망 자체도 불투명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사업이 지지부진한데도 내부적으로 납부를 결정한 상태라 하니 말이 독려지 기업들은 압력이라 느꼈음이 분명하다. 해당 행정관은 관련 업무를 챙기는 일환이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행정관의 단순한 과욕이 아니라 권력 남용 사건이다.
우선 청와대 행정관은 직급으로 그 영향력을 따질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청와대는 권력의 핵심이고, 그 속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관의 기금 출연 요청을 기업들이 행정관 개인 의견으로 간주하고 쉽게 무시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해당 행정관은 아이피티브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출신으로 위원회 시절부터 관련 업무를 취급해왔다. 청와대와 방통위 모두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번 양보해서 개인의 판단이었다 할지라도 방통위 출신 행정관이 정관사항이라며 민간단체인 협회의 재원과 그 운영까지 걱정해주는 오지랖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협회장의 존재를 배제하고는 이해할 수 없다. 김인규 코디마 회장은 대선 시절부터 현 정부의 방송 관련 실세로서 <한국방송> 사장 후보로 꾸준히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차기 방통위원장감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회장이 김인규씨가 아니더라도 코디마의 기금 모금에 행정관이 직접 움직였을 리는 없다고 본다. 권력 외부의 실세를 위해 권력이 움직인 것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인 것은 이에 대해서도 각자의 이야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김 회장의 부인과 달리 청와대는 협회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기금을 요청한 바가 없다는 김 회장의 말과 배치된다. 청와대의 말대로라면 협회 직원은 기업에 기금을 요청한 전후 회장에게 보고한 바가 없다는 것이니 김 회장은 허수아비 회장인가? 김 회장의 말대로라면 신규 진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협회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거액을 출연할 수 있다고 믿는 천진난만한 회장님이라는 소리인데 이런 분이 협회를 이끌어 갈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할까?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수많은 사건들에서, 대표적으로는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저지른 잘못보다는 잘못을 은폐하려 한 거짓말이 더 큰 화를 자초했음을 알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측면이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더 답답한 것은 권력 남용 사건 그 자체보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잘못이라 인정하지 않는, 아니 아예 그렇게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아 보이는 권력의 자세이다. 행정관 개인이 한 일이며 기금 규모를 얘기하지도 않았고 독려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청와대의 반응이다. 현재 밝혀진 결과만으로도 권력 남용임이 분명하고 관련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다른데, 적극적인 조사를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을 가장한 대운하 강행, 용산참사에 대한 무대응, 미디어악법 관철 등 이 정부가 보이고 있는 일관된 ‘비판 무시 전략 자세’를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권력 남용, 거짓말, 그리고 무대응. 그래서 이런 것까지도 기사화하지 않는 우호적 언론들로 언론 구조를 개편하려 그리 애쓰는 모양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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