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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노자칼럼] 이명박 정권의 안정화 이유

등록 2009-10-12 21:06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최근 국내 정치를 보노라면 불가사의한 면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면으로는, 각종 사회적 격차가 지속적으로 커지기만 한다. 경제성장이 멈춘 대한민국에서 계속 성장하는 것은 15%에 이른 뒤에도 계속 높아지기만 하는 상대적 빈곤율뿐이다. 소수의 부유층만 제외하면 다수의 한국인들은 “삶이 너무나 고달프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빈곤율이 이미 40% 가까이 되는 노인층이나 실업률이 지난 1년간 거의 30%나 껑충 뛴 최근 대졸자 등 젊은층은 벌써 거의 ‘제3세계’와 다를 게 없는, 희망이 안 보이는 세상을 살고 있다. 고성장 시절에 소수의 엘리트를 제외한 다수의 월급쟁이와 자영업자 사이의 소득 불평등이 그리 심하지 않던 한국 사회의 불평등 지수는 지금 미국이나 중남미 수준이다. 이런 판에 현 정권이 부자 감세 실시나 서두르니 이게 강남공화국의 정부인지 대한민국의 정부인지 불분명하다고 이야기할 만도 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격차 사회를 심화시켜 나가는 이명박 정권의 지지기반은 점차 굳어지는 느낌이다. 지지율이 40∼50%를 왔다갔다하는 사실은, 한때 이명박을 별로 달갑지 않게 봤던 수많은 ‘중간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이제 그를 지지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공황의 참경 속의 극우 정권의 인기 상승, 그 비결은 무엇인가?

불가사의해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이명박 정권이 안정궤도에 진입한 데에 나름의 이유는 있다.

첫째, 저들은 본질적으로 강남공화국의 수장층임에 틀림없지만 강남공화국 영토 바깥의 여러 중간집단과 ‘연대’도 꾸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서 건설 규제 완화와 거대형 토건 프로젝트 진행, 저금리 정책 등을 통한 이명박 정권의 “집값 떠받치기”는 일차적으로 강남 귀족들의 자산가치를 살려주는 정책이지만, 이와 동시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55%의 한국인들에게도 나름의 호소력을 지닌다. 물론 그 정책의 이면에 비싸진 전셋값을 울며겨자먹기로 내야 하는 45%의 무주택자의 고통도 있고 1990년대의 일본과 같은 부동산 거품 빠지기와 전체적 경기 붕괴의 커다란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토건주의가 나라를 망친다 해도, 지금 당장에 주택 소유자 계층의 상당 부분은 이명박의 “토건형 케인스주의”를 좋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 국내의 극우·보수 블록은 이명박의 포퓰리즘, 즉 반북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코드’도 공유한다. 물론 그 근시안에 있어서 반북주의는 토건주의에 결코 못지않다. 맹목적 반북주의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계속 증강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서 북한 지배계급 안에서의 강경파의 위치를 강화시켜줄 뿐이다. 북한의 군사주의적 강경 노선이 결국 한국에서의 병영사회 지속과 일본의 보수화 위험을 의미하지만, “빨갱이 거지떼에게 왜 돈을 퍼붓느냐”는 말초적 경제주의에 빠진 한국의 자만적 보수층에게 이를 설명해주기 어렵다. 가난한 동포에 대한 멸시가 섞인 혐오와 아프리카에서 대형 농장을 사서 ‘해외 식량기지’나 만들 만한 국력을 키운 아류 제국 대한민국에 대한 쇼비니즘적 ‘긍지’야말로 이명박 극우·보수 블록의 중심적인 정서적 코드다.

이와 비슷한 정신상태를 과시했던 일본 자민당의 극우·보수 블록이 이번 총선에서 붕괴했듯이 이명박의 보수 대연합도 장기적 저성장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붕괴할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한반도의 자연과 노동자, 서민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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