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몇 해 전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가짜 계란은 “그 정도 기술이면 뭘 못 만들겠느냐”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현란한 눈속임은 사실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멕시코 고원지대의 고대 아즈텍에선 카카오콩을 상품화폐로 썼는데, 그때 이미 ‘진흙을 빚어 진짜 카카오콩에 섞어 넣은 가짜’가 있었다.
도축업자들이 도축 전 소에게 물을 먹이는 짓도 저울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냉동기가 등장하자, 쇠고기에 물을 뿌려 다시 얼리는 방식도 횡행한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고기 부분이 보통 30~35% 나오지만 물 먹인 소는 45%까지 나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께 워낙 문제가 심해 범법자에게 최고 징역 7년을 선고할 수 있게 처벌을 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눈속임은 피해 정도가 그나마 작다. 미국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이른바 ‘그림자 금융’으로 세계 금융위기에 불을 댕겼다. 투자위험이 큰 파생금융상품을 자회사에 넘겨 본사는 고수익을 챙기고, 투자위험은 본사 회계장부에서 빼는 방식이다. 최초 대출의 부실이 파생금융상품의 손실을 눈덩이처럼 키우자 그 손실은 결국 본사의 몫이 됐고, 그것이 핵반응을 일으키듯 월가를 강타했다.
요즘 우리나라의 나라살림 회계가 월가의 그림자 금융을 닮아가고 있다. 대규모 감세 탓에 재정수입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재정에서 돈을 써야 할 사업을 민간, 공기업에 넘기고 있다. 정부는 당장은 이자 정도만 주면 되니까 적은 돈으로 큰 규모의 사업을 벌일 수 있다. 그런데 최소 수입을 보장하기로 하고 민간에 넘긴 사회기반시설 사업의 상당수가 이미 ‘돈 먹는 하마’가 됐다. 수자원공사는 손실이 얼마가 될지 모를 4대강 사업을 떠맡을 처지다. 국가부채에 포함되지 않는 공기업 부채는 폭증하고 있다. 소에게 물 먹이는 짓 정도는 그냥 눈감아주고 싶어진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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