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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미누에게 노래를, 미누에게 자유를 / 이진경

등록 2009-10-15 22:52

이진경  일본 히토쓰바시대 방문교수
이진경 일본 히토쓰바시대 방문교수




40대 중반의 나이에,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많이들 그랬겠지만, 나의 삶은 눈물로 시작된 것 같다. 내가 들어간 대학은 나의 눈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태일의 일기, 광주백서만은 아니었다. 경찰을 피해 도서관 창틀에 올라가 메가폰으로 외치던 어느 선배의 추락, 가깝지는 않았어도 얼굴을 보면 서로 알 만한 후배들의 죽음… 그 눈물들이 나의 삶을 흔들어놓았고, 두려움에 떠는 나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했다. 스물의 내가 “팔 할이 바람”이었다면, “이 할은 눈물”이었을 것이다.

네팔사람 미노드 목탄, 우리는 그를 ‘미누’라고 부른다. 그는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된 록밴드 ‘스톱 크랙다운’의 보컬리스트다. 인연이 있는지, 3년 전 내가 공부하고 활동하던 공간(수유+너머)에서 만났다. 그때는 가수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방송국 활동가였다. 어린아이들마저도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 좋은 ‘미누 아저씨’였다.

그런데 미누로 인해 나는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한 번은 2007년 송년회 뒤풀이에서였다. ‘스톱 크랙다운’의 2집 앨범의 ‘베트남 아가씨’란 노래가 좋다며 한 번 해달라고 했는데, 그는 의외로 빼다간 엉뚱하게도 박노해의 시로 만들었다는 ‘손무덤’을 불렀다. 그가 무대에 설 때마다 항상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기도 했다.(그는 무대에선 항상 빨간 목장갑을 끼는데, 이는 잘려나간 손목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박수를 치고 나선 고지식하게도, 그 노래는 지금 대중들 정서와는 거리가 좀 있는 거 같지 않으냐고 웃으며 덧붙였다. 그는 정색을 하면서, 그 전해에 마석에서 만났다는 네팔인 후배 얘기를 했다. 프레스에 옷자락이 물려 오른쪽 팔이 다 잘려나가 한쪽 팔이 없었다고. 주정처럼 그 얘기를 반복하며 그는 울었고, 얘기를 들으며 할 말을 잊은 채 나도 울었다. 한국에선 노동자들도 다 잊은, 이삼십년 전에나 듣던 얘기가 그들에겐 현재였던 것이다.

또 한 번은 며칠 전, 지금 살고 있는 도쿄에서였다. ‘수유+너머 N’ 누리집의 “미누가 잡혀갔대”라는 글에서 본 미누의 말 때문이었다: “언젠가 이 땅을 떠나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 그런데 그날 밤 꿈에 비꾸, 다라카, 안드레이 등 강제추방 공포로 자살한 이주민들이 나타났어. 나를 부탁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어… 울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내 몸, 내 생각 모두를 이들을 위해 바쳐야 해. 책임져야 해…” 그게 아니어도 10월8일 그가 잡혀갔다는 소식에 당혹했던 데 더해,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니면서 힘든 ‘불법체류자’의 삶을 지속한 이유를 읽고선 다시 울고 말았다.

그러나 미누는, 그리고 내 주변의 이주노동자들은 결코 연민을 구하는 ‘고통받는 약자’가 아니다. 그들은 이주노동자 자신의 삶을 자신의 노래로, 자신의 카메라로 담고, 문제를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항상 활기차게 웃고 있다. 두 번 흘린 나의 눈물도 결코 동정의 눈물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던져, 조여 오는 그물을 뚫어 이웃한 이들의 고통스런 삶의 출구를 열려는 혼신의 노력과, 그가 직접 대면하고 있는 힘든 삶 사이의 거리에서 흘러나왔던 것일 게다.

그런 그가 이젠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그가 다시 노래하고, 다시 카메라를 들 수 있게 되기를! 미누에게 자유를!

이진경 일본 히토쓰바시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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