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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4대강 사업, 단계적 접근을 / 정석구

등록 2009-10-15 22:55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400여쪽에 이르는 정부의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을 읽다 보면 ‘신천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푸른 강물 위로 날렵한 수상스키가 물살을 가르고, 잘 다듬어진 강변 도로에는 형형색색의 자전거들이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질주한다. 강 건너 모래사장과 어우러진 갈대숲 위로 철새 떼가 날아오르고, 중년의 사내 몇몇이 한가로이 낚시를 즐긴다. 강가로 이어지는 장애인용 경사로의 손잡이에 설치된 점자표시판은 약자를 배려하는 정부의 세심함이 엿보인다. 연례행사였던 강물 범람과 물고기 떼죽음은 옛이야기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을 이런 신천지로 만들겠단다. 거기에다 홍수와 가뭄 걱정을 없애고, 수량을 늘려 강물을 맑게 하고, 덤으로 경제까지 살릴 수만 있다면 4대강 사업을 누가 반대하랴. 그런데 한 가지만 짚고 가자. 단군 이래 최대라는 이런 대형 토목사업을 2011년까지 2년 만에 마무리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거론할 때마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빗대어 말한다. 그때도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저렇게 번듯하게 만들어놓지 않았느냐고. 청계천 사업이 과연 제대로 된 하천 복원인지, 도심에 콘크리트 개울 하나 만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일단 접어두자. 청계천 복원사업 구간은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성동구 신답철교까지 5.8㎞다. 3867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고, 공사는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2년 2개월 걸렸다. 그런데 4대강은 그 본류만 무려 1300여㎞다. 지금까지 잡힌 사업비만 22조원이다. 사업 내용과 방식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런 대형 사업을 청계천과 비슷한 2~3년 안에 끝내겠다고? 자가용 경비행기 한 대 만든 경험을 과시하며 당장 달나라행 우주선을 쏘아 올리겠다고 덤비는 꼴이다. 전국에서 동시에 공사를 시작하고, 최신 장비와 인력을 대거 동원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겠지만 책상에 앉아선 무슨 그림인들 못 그리겠는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사업을 밀어붙이려다 보니 온갖 무리수가 동원되는 것은 당연한 일. ‘부자 감세’로 가뜩이나 재정 형편이 어려운데도 4대강 예산을 확보하느라 다른 부문의 예산을 막무가내로 삭감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공기업에 사업비를 떠넘긴다. 규정까지 바꿔가며 환경영향 평가를 졸속으로 시행하고, 내년 예산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공사 발주부터 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4대강 정비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정부 계획대로 정비할 경우 홍수 방지와 수질 개선 효과 등이 있을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제의 근원은 이 대통령이 그의 임기 안에 4대강 사업을 마무리하려는 데 있다. 4대강을 완벽하게 개조해 보겠다는 그의 꿈 자체는 평가해 줄 대목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진정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싶다면 임기 안에 성과를 내겠다는 아집부터 버려야 한다. 지금 같은 방식의 4대강 사업은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 실행되기도 어려울뿐더러 설사 무리수를 두면서 강행한다 하더라도 이 대통령은 4대강을 망가뜨린 국토파괴자로 기록될 뿐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임기 안에 4대강 정비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개략적인 정비 계획만 세워도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굳이 임기 중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다면 4대강 중 시범적으로 하나의 강만 집중 개발해 그 결과를 검증받는 것도 방법이다. 소모적인 논란을 빨리 끝내고, 합리적이고 단계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4대강 사업은 이 정부가 역사적 소명 운운하며 임기 안에 졸속으로 끝낼 수 있는 사업이 결코 아니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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