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침해가 도를 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두순에 대해 ‘종신형’을 촉구하였고 국정감사에서는 의원들이 조두순의 양형에 대해 고등법원장들을 질타하였다. 일반인들이 조두순의 양형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는 법원 고위직의 임명 및 추천권자이며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법관들 전체의 임명에 간여한다. 이러한 대통령과 국회의 행태는 피고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한다. 형량이 확정된 조두순은 아니더라도 다른 성범죄 피고인들의 권리는 침해당하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모든 국민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검찰의 독립성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검찰은 행정기관으로서 대통령 및 국회가 정하는 형사정책을 충실히 이행할 의무를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검찰의 공권력 행사는 모두 이론적으로는 법원의 영장이나 판결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지 않은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를 할 수도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검찰의 그것보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훨씬 더 중요하다.
개별 국회의원이 법원 판결에 대해 개인적인 실망감을 표현하는 것까지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정감사를 통해 법관들을 꾸짖으려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판사 봉급과 같은 법원행정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한 국정감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국회나 대통령이 특정한 결과를 촉구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한다. 미국 국회에서도 법원 판결들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판사들을 불러서 질타를 하거나 특정한 결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학교수들의 의견을 들어 법 개정의 참고자료로 삼을 뿐이다. 국회가 법관을 불러 판결을 잘못했다고 따지는 상황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가. 이태운 서울고등법원장은 ‘법대로 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였는데 법관이 이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정녕 원하는 것이 ‘법대로 하는 것’ 이상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다른 요소들은 많이 있다. 신영철은 아직도 사퇴하지 않고 있으며 그의 존재는 사법부 내부의 위계질서가 사법부 독립의 본질인 개별 법관의 독립을 어떻게 훼손할 수 있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 외부의 힘은 사법부 내부의 위계질서만큼이나 법관의 독립을 훼손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신영철이 ‘촛불시위자들은 실정법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는 주문을 후배 법관들에게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만약 이 대통령이 신영철에게 그 주문을 했던 것으로 지금이라도 밝혀진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우리는 훨씬 더 분노하였을 것이다. 피고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대통령이 특정 피고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특정한 판결을 주문해서는 안 된다. 조두순에게 분노하는 만큼 우리는 사법부 독립의 침해를 경계해야 한다.
대법원 국감에서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 위원장을 부를 것이라고 한다. 국회가 정녕 조두순 사건에 대해 분노한다면 양형위원회에 무어라 할 것이 아니라 국회가 직접 양형 기준을 법제화하여 챙기면 법관들이 이에 따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권한은 뒷전에 두고 법관들을 조종하려 하는 것은 독립성 침해이다. 오히려 대법원 국감에서는 국감 본연의 대상인 사법행정의 문제를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왜 신 대법관이 아직도 사퇴하지 않는가. 앞으로 법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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