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일본의 정권이 바뀌고 나서 변화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방위성은 최근 항공자위대의 이라크 수송 활동 기록을 60살 여성에게 전면 공개했다. 자위대의 대외활동을 우려하는 이 여성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수송 활동의 내용을 밝히라고 다섯 차례에 걸쳐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자민당 정권은 “부흥 지원 활동에 종사하는 관련 국가들과의 신뢰관계를 해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운항 일수 등을 제외한 대부분을 검게 칠해서 내줬다. 하지만 기타자와 도시미 신임 방위상은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2006년 7월부터 작년 말까지 2년 5개월 치 기록의 전면 공개를 지시했다. 앞으로도 민감한 내용이 아니라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총리 관저는 시정 방침을 알리는 ‘메일 매거진’을 정기적으로 누리집에 띄우고 신청자에게는 전자메일로 보내준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매거진도 이달 들어 나오기 시작했다. 창간호와 두번째 호에는 신임 각료들의 인사말과 포부가 간략하게 실려 있다. 오카다 가쓰야 외상이 외교의 당면 주요 과제로 내세운 것은 북한 문제나 핵군축이 아니다. 그는 외교란 국민의 이해와 신뢰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취임 직후 소위 ‘밀약’을 둘러싼 과거의 사실을 철저히 조사해 11월 말까지 결과를 보고하도록 명령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면한 백일 동안의 3대 과제로 미군재편,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지원, 기후변동을 꼽았다.
오카다 외상이 가장 중점을 둔 밀약 조사는 무엇인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무슨 내용인지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비밀협정으로 여러 개가 있다.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때 핵무기 반입을 인정하거나 한반도 유사시 주일 미군기지를 사용토록 한 것 등이다. 안보조약을 개정하면서 핵병기의 일본 반입은 사전협의 대상이라고 했지만, 핵병기를 탑재한 미국 함선의 기항·통과는 사전협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따로 밀약을 맺었다. 일본 정부는 핵무기 배치 논란이 일면, 미국이 사전협의를 요청해온 적이 없기 때문에 핵무기가 들어온 적이 없다는 주장을 줄곧 폈다. 1972년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때 미국이 대외적으로 자국이 부담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이전 비용의 일부를 일본에 떠넘긴 내용도 있다.
국가의 대외관계에서 밀약이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이라면 밀약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일정 기한이 지나면 문서를 공개해 국민의 이해를 얻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역대 자민당 정권은 정반대로 나갔다. 미국에서 밀약에 관한 문서가 공개되면 미국 정부에 항의해 다시 기밀 지정을 하도록 했다. 오키나와 밀약을 보도했던 일본인 기자는 구속돼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당시 밀약 체결에 관여했거나 인계를 받았던 극소수의 고위 관리가 인생의 만년에 들어서 상대국이 공개한 내용까지 비밀로 할 필요 없다며 밀약의 존재를 인정하는 증언을 해도 밀약은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국회에서건 법정에서건 거짓말을 했다.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이 역사적 참패를 당한 것은 국민을 완전히 바보 취급하는 행태에 대한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을 들으며 정권이 바뀌었다는 의미를 새삼 실감한다. 동시에 우리의 정권 교체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도 생각하게 된다. 과거사를 파헤치는 것은 쓸데없는 정쟁으로 치부하고 정보·공안기관 등의 불법사찰 의혹 등이 제기되면 진지하게 조사를 해보기는커녕 의혹 제기자들을 처벌하겠다고 협박만 해댄다. 정권 교체의 의미가 너무나 다르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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