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학교를 제대로 경쟁시키려면 / 송인수

등록 2009-10-19 20:49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조전혁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연구 목적으로 받은 고교별 수능 성적을 한 일간지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다. 조 의원은 ‘학교 간 학력 격차의 심각성’이 드러났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정책 대안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정책 대안은 원인에 대한 해석과 관련 있으니, 그의 자료 해석이 옳은가를 먼저 따질 일이다. 조 의원의 지적처럼 수능 성적이 좋은 학교의 대부분은 외국어고교나 자립형사립고라는 사실은 맞다. 문제는 왜 그 학교들이 우수한 학력을 나타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차이가 순수하게 학교가 공부를 열심히 시킨 탓이라면, 학교를 수능 성적에 따라 줄 세우는 것이 나름의 정당성도 있겠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수능 상위권 학교 태반은 중학교 때부터 전국 상위 몇 % 이내에 드는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한 학교들이다. 우수 학생 집단이 입학했으니 그 고교가 우수한 수능 성적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입학생 선발 효과를 학교의 교육 능력 결과로 뒤바꾸면서 이 결과를 토대로 ‘학교 간 학력 격차’를 나무라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학교 교육 격차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간단하다. 중학교 때 전교 등수가 비슷한 학생들 중 외고나 자사고로 간 학생과 일반고로 진학한 학생들을 종단 연구로 추적해 성적 차이를 확인하고 그중 학교 변인을 찾아내 학교 실력 차이를 비교하면 된다. 그런 서열화라면 의미 있다. 그러나 이번 결과 발표는 이런 절차를 다 생략하고 고교 입학생의 학력차를 학교 실력 차이로 규정하고 학교를 서열화시켜 버렸다.

대책 또한 간단하다. 입학생들의 선발 효과가 고교 학력 격차의 주요 변수라는 점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일반 고교들이 상위권 입학생들이 없어 출발점부터 학교 격차가 난 것이라고 핑계 대지 않도록, 학교 간 입학생들의 성적을 균질화시켜야 한다. 즉, 외고, 자사고도 일반고와 비교적 유사한 실력을 갖춘 입학생들을 받아 일반고와 경쟁시킨 후 그 차이를 확인하고, 그 결과가 의미 있다면 학교를 서열화시키라는 것이다. 학교를 제대로 경쟁시키는 올바른 방법이다. 그러나 이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특목고나 자사고 선호도는 높아지고, 일반고 기피 현상은 피할 도리가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70년대 온 국민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고교 입시가 더 막강한 무기를 장착하고 돌아온 셈이다. 당연히 너나 할 것 없이 고교들은 성적 좋은 학교로 인정받기 위한 매우 살 떨리는 점수 경쟁으로 몰입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차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노력해도 역전이 불가능한 구조, 즉, 서열의 고착화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학교 간 경쟁은 둔화되고, 정해진 학교 서열을 따라 고교 진학을 위한 아이들과 부모들의 경쟁만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쟁에 도움 되는 사교육은 활황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도 벌써 중학교 사교육은 고등학교 사교육 시장을 육박하거나 넘었으니, 지옥이 따로 없게 될 것이다.

정권은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었다. 1994년 수능제도가 도입된 이후 15년간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든 관계없이 한 번도 학교 간 비교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것을 열면 그 화(禍)가 정권에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 만큼은 사리 분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사교육과 거의 전쟁 수준의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 정부가 해온 ‘사교육 경감사업’들이 이번 조 의원의 발표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내부에서 생긴 뜻밖의 이 퇴행에 어떤 대응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