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우 ㈜도움과나눔 대표
가을이다. 책상 위에 여러 단체에서 보내온 ‘후원의 밤’ 초청장이 쌓여간다.
올해는 큰 후원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듣는다. 수년 사이에 시민사회의 후원 기반은 일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나는 시민사회가 한국에 ‘밥 먹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한 이후 ‘만약 당신이 그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에게 말해서 밥이 되게 하라’고 시험하는 마귀에게 예수님은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모든 말에 기반해서 산다’고 대답했다. 나는 시민사회가 한국 사회에 ‘근본적인 언어’를 소통시키는 귀중한 존재라고 믿는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의’의 문제에 집착한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는 깨어 있고 새로운 생산력을 회복한다. 우리의 복리는 상당 부분 시민사회가 ‘스스로 의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다.
오래전에 참 가난한 화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젤을 재활용하기 위해서 이젤에서 벗겨낸 유화들이 널려 있는 그 젊은 화가의 방에서 나는 처음으로 화가의 삶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이 고집으로 사회를 위한 무엇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는 그 부를 감당할 사회의 가치체계를 준비하고 있는가? 유수한 대학들의 모금 전략 컨설팅에 참여하면서 필자는 ‘앞으로 20~30년 동안 아시아에 인문·사회학적 큰 에너지 공급이 이루어지겠다’는 직관적 판단을 하게 되었다. 공학 분야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아시아 대학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인문·사회학 분야에는 아시아 대학들과 세계 수준의 대학 사이에 격차가 현저하다. 이미 홍콩 과학기술대, 싱가포르 국립대학 등 한국 대학들과 격차를 벌이고 있는 아시아 대학들이 인문·사회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많은 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국제사회를 디자인하는 능력이 있는 국가와 그 국민만이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결정적인 시기에 시민사회에 내재된 담론 형성의 역량은 국가의 경쟁력이다. 함께 가꾸어가야 할 자산이다. 한국의 기부 문화가 전반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최근 많은 시민·사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사회·정치 환경 변화에 대해서 시민·사회단체가 선제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세계적인 흐름인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상생적 협력이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모델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매우 거친 풍파를 만났다. 비영리 섹터는 이념을 초월해서 존재하는데도 최근 사회의 소중한 자산인 비영리 섹터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거칠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비영리 섹터의 본질적 경쟁력이 강화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향후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일반 개인의 고액 기부와 시민들의 정기 기부가 압도적으로 증가해야 시민·사회단체가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의 자선 문화의 중심은 히브리어 ‘체데크’(정의)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자선함을 체데크라고 하고 모금전문가를 심지어 ‘가바이 체데크’(정의의 관원)라고 한다. 자선이 ‘사랑’이 아니라 ‘정의’에서 파생된 것이며 덤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체계로서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뿌리 깊고 쉽게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자선의 세계로 한국은 움직이고 있다.
최영우 ㈜도움과나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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