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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100년 앞 내다본 안중근 / 김삼웅

등록 2009-10-23 21:22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10·26 의거’ 100주년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흉적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대한의 자주독립과 한민족의 의기를 만천하에 드높였다. 침략주의 세력의 상징 이토를 토살함으로써 조국을 지키고 동양평화를 이루고자 했다.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이토는 만주를 넘보고 대륙 진출의 야망을 위해 하얼빈에 가던 길이었다. 안 의사는 이토의 심장을 향해 통렬하게 세 발을 쏘았고 적중하여 흉적은 쓰러졌다. 이를 지켜본 안 의사는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대한만세!’를 세 번 외쳤다.

안 의사는 거사 전에 ‘장부가’를 지었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어느 날에 과업을 이룰고/ 등불이 점차 차가워짐이여 장사의 의기는 뜨겁도다/ 분기하여 한번 지나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룰지어다/ 쥐도적 이토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고”(후략)

세상에는 자유케 하는 폭력과 속박하는 폭력이 있다. 안 의사의 의거는 자유케 하는 폭력이고 일제의 한국 침략은 속박하는 폭력이었다. 일제가 안 의사를 암살자·테러리스트라고 폄훼하고 처형했지만, 의사는 한국과 동양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원효대사는 까치새끼 10마리를 집어삼키려는 독사를 거침없이 지팡이로 내리쳤다. ‘불살생’을 말하는 제자에게 ‘일살십활론’(一殺十活論)을 폈다. 나치시대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 제거에 나섰다가 체포되어, “미친 운전사를 방치하여 희생자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보다 핸들을 빼앗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하며 교수대에 섰다. 중국혁명의 지도자 천두슈(陳獨秀)는 “사회적 악과 싸워야지 불의에 도피하여 안일을 누려서야 되겠는가. 청년들이여! 톨스토이나 타고르가 되기보다 콜럼버스나 안중근이 돼라”고 <청년잡지> 창간사에서 썼다.

안 의사는 독실한 신앙인이고 평화주의자였다. 사형선고를 받고 ‘동양평화론’을 쓸 시간을 벌고자 항소를 포기하고, 법정을 동양평화사상의 설교장으로 삼으려 했다. 안 의사가 옥중에서 미완으로 남긴 ‘동양평화론’은 100년 앞을 내다본 동양의 미래상이다.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한·중·일 공동관리 지역을 만들고 평화회의를 조직하고 공동은행과 공용화폐를 제작하고 3국 청년들로 공동군단을 조직하여 평화유지군으로 활용하자는 방안이다. 유럽공동체보다 반세기 이상 앞선 구상이었다.

지금 동북아는 중화제국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이 치열한 국력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공동으로 엠디(MD)망을 구축하고 이지스함 곤고(7200t급)에서 요격미사일(SM-3)을 발사해 대기권 밖 요격에 성공했다. 중국은 건국 60주년 행사에서 선보인 핵탄두를 탑재하고 미 본토까지 가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둥펑-41과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중이다. 중·일 두 거대국이 경제·군사적으로 경쟁하면서 동북아의 앞날은 대단히 불투명하다. 사자와 호랑이에게 풀 뜯어먹고 살라는 훈계가 먹히지는 않겠지만, 안 의사의 뜻을 받들어 동북아 또는 동아시아공동체를 구성하면서 동양평화를 일궈나가야 하지 않을까.

일본 신임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는 ‘동아시아공동체론’을 펴면서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 3국 정상회담에서도 이를 제시했다. ‘동양평화론’은 ‘동아시아공동체’의 첫걸음이고 종착지다. 안 의사의 철학과 사상이 담긴 장려한 비전이다. ‘10·26 의거’ 100주년을 맞아 의거에 담긴 폭력주의 제거의 자유정신과 동양평화론의 ‘지나간 미래상’에 실천적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안중근의 거룩한 이름에서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찾는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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