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원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
제41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결과가 뜨거운 감자처럼 여겨지고 있다. 서울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아프가니스탄에 경제적 지원만이 아닌 “추가적인 종류의 지원”을 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게이츠 장관 방한 시 아프간 문제는 의제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 보도자료는 한-미 국방장관 논의의 초점이 이른바 ‘한-미 전략동맹’에 걸맞게 ‘한반도 외부의 도전에 전향적으로 대처하는 동맹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뒤 나온 모든 동향보도는 아프간 문제에 한국과 일본의 지원 확보가 이번 순방의 목적이라고 했다.
올해 초부터 워싱턴 주요 싱크탱크들은 아프간 정책보고서를 무수히 쏟아내고 있다. 최근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국제안보지원군 사령관이 “적절한 수준의 인적, 물적 자원 제공이 아프간 정책 성패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 게 마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 증원을 꺼리는 데 대해 반기를 든 것처럼 비칠 정도로 논란이 심각하다. 그런 만큼 열외로 빠져 있는 동아시아의 두 동맹국 한국과 일본에 대한 시선이 따갑다. 지금까지의 ‘예의 바르고 부드러운 외교’가 유약하게 보여서인지 동맹국들의 지원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때론 터프 가이로 비쳐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전략동맹 운운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전략동맹이라는 용어로 참여정부와 차별화하더니 실제 행동은 실망스럽다는 거다. 자초한 거다.
2003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파병을 요청할 때와는 성격이 다르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뒤라서 지금처럼 절박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 그리고 전쟁의 성격도 이라크전과는 크게 다르다. 9·11 테러를 일으킨 세력을 색출하는 것은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다. 이제 미국은 아시아 동맹국이 아닌 유럽의 나토 동맹국에 크게 의존하던 아프간 전쟁 수행방식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알카에다를 추적하여 근거지를 없애고, 아프간의 무고한 주민들을 알카에다의 공격에서 보호하며, 나아가 개발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미군을 증파하고 더 많은 돈을 집어넣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게이츠 장관은 과거와 달리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아프간 전쟁을 한국이 도와야 한다고 요청하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원 방식은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지만 미국이 경제 지원만을 위해 국방장관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주저앉는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서남아시아 전역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미국이 지도력을 상실하는 것은 미래의 세계 평화와 안정에 좋은 일이 아니다.
방안을 살핀다면 역시 경제 지원과 인적 지원을 배합해야 한다. 파병 효과는 극대화하면서도 장병의 안전은 최대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처럼 바그람 공군기지에 의료, 공병부대를 다시 보내는 방법이 하나의 방안이다. 파병 효과는 크지 않지만 미국과 현지인들 양쪽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이라크처럼 하나의 지역을 책임지는 대규모 비전투병 파병은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타격 대상으로 너무 두드러질 위험이 있다. 아프간 국가보안군 및 경찰과 그외 유럽의 나토군 병력과 섞여서 수도 카불의 경계 및 안정화 임무를 수행할 소수정예 병력을 보내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책임 있는 공론화 작업을 시작할 시점이다. 그 이전에 이명박 정부는 그간 미국의 요청에 대해 소상히 알려야 한다. 진보·개혁 진영도 처음부터 파병 반대를 자기 입장으로 정해놓고 논쟁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박선원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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