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기고] 스스로 권위 포기한 ‘용산’ 재판부 / 김희수

등록 2009-10-29 22:11

김희수  변호사
김희수 변호사
용산 참사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을 바라보면서 재판부 스스로 법원의 권위를 포기하고, 사회적 약자에 무관심하였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다. 그 이유는 재판 진행 과정에서 검찰이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불복한 행위에 대한 법원의 태도다. 검찰이 법원 명령에 불복종하는 태도는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지위 등에 위반되는 처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법원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러한 검찰의 불복종 도발행위에 대하여 재판부는 단호하게 법원의 권위를 스스로 지켜야 했다. 법원의 권위를 스스로 지키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법의 이념과 규정에 따라 피고인들이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법원은 구체적으로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고 무기력하게 대응하였다. 검찰이 법원의 명령에 불복하는데도 재판부 스스로 법에서 정하는 소송지휘권과 압수·수색 권한 등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검찰의 기록 비공개 행위에 대하여 피고인들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재판이 진행중인데 검찰은 의견서를 통해 법원이 압수·수색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검찰의 이러한 지적이 법원에 대한 두 번째 모독처럼 보인다. 두 차례에 걸쳐 법원의 권위가 짓밟혔는데도 재판부가 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권한을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 법원의 권위를 포기하고 검찰에 굴종하였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로 인하여 피고인들이 정당하고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재판부의 판결문을 보면 검찰의 수사기록 비공개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찾을 수 없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기록 비공개에 항의하며 변호인단의 재판 거부라는 미증유의 사태까지 발생하였음에도 이런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눈을 감고,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이는 명백한 판단 유탈행위이며, 위법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는 피고인들에 대한 선고 형량이다. 용산 참사는 인간의 생명보다 돈과 물질을 숭상하고, 권력을 사용함에 있어 인간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자들에 의하여 짓밟힌 우리 시대의 자화상 같은 사건이다. 따라서 용산 참사에 대한 피고인들에게 설혹 유죄가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그 양형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과, 국가와 사회적 책임을 당연히 고려했어야 한다. 그러나 피고인들에게 선고된 징역 6년의 형량을 살펴보면 그런 고민을 한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피고인들은 재판을 받아야 하는 주체였지만 그 실상에서는 피해자였던 사건이었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사회적 약자인 철거세입자들의 입장을 사회적으로 수용하지 못함에 따라 발생한 측면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재판부가 선고한 형량을 보면 피고인들의 피해자 측면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진압 과정에서 철거민은 5명이나 사망하였다. 단지 판결 이유에서 사회적 약자인 점을 참작하였다고 기재하고 있다고 해서 그 판결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법원의 권위를 포기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운운하고 국민의 신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법부에 종사하는 대다수가 묵묵히 소신껏 일하고 있는데 이런 판결이 사법부 독립과 신뢰성에 커다란 흠집을 낸 것은 사법부에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법원의 권위는 스스로 지킬 때 가능한 것이다. 이 판결은 법원의 권위를 스스로 추락시킨 판결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김희수 변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