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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북한을 중국으로 내모는 엠비 정부 / 오태규

등록 2009-11-02 21:32

오태규 논설위원
오태규 논설위원
아침햇발
북한과 중국이 마치 결혼을 앞둔 연인이라도 되는 양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고대광실 부잣집 아들과 울며 겨자 먹기로 팔려가는 가난한 집 처녀의 어색한 밀월처럼 보여, 마음이 거북하다. 최근 부쩍 깊어지고 있는 ‘북한의 중국화’ 현상은 정치·경제·군사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사회·문화 등 일상생활의 깊숙한 곳까지 뿌리를 뻗치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초 세세대대로 북-중 우호관계를 이어가기로 하고, 수천만달러에 이르는 식량·원유의 무상 지원 및 신압록강대교 건설에 합의한 것은 이런 흐름을 국가 차원에서 공인하고, 강화해 나가겠다는 신호다.

북한의 중국화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압록강·두만강 주변의 북부 지역이 중국 동북 3성에 급속히 통합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북부지역의 동북 4성화’라고 할 수 있다. 신압록강대교 건설은 중국 중심의 신의주·위화도 특구 개발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두만강 유역에서도 중국의 동북지방과 북한의 나진·청진항을 연결하는 인프라 건설이 왕성하다. 훈춘에서 나진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 두만강변의 북-중 국경을 달리는 동변도철도의 연장 사업, 중국 기업의 나진·청진항 개발사업 수주가 그것들이다. 중국이 남북관계 악화가 낳은 남북협력의 공백을 파고들며, 북-중 국경지대에서 독주 개발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와 생활 분야도 중국이 휩쓸고 있다. 외국 관광객은 중국인 일색이 된 지 오래고, 상점의 진열대와 공장도 중국산 상품과 기계로 가득하다. 심지어 북한이 주체 예술로 자랑하는 집체극 <아리랑>마저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인요한(미국이름 존 린튼) 연세대 의대 교수는 한 모임에서 “아리랑 공연의 3분의 1이 중국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된 것이 이전과 다른 가장 큰 변화였다”고 전했다.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그가 그런 변화를 놀랍게 받아들일 정도라면, 북-중 수교 60돌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심상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이 북한의 중국화를 촉진하는 결정적인 노릇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중국에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일본 극우세력의 대표 인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모를까, 한국이 북한의 중국 의존도를 심화하는 정책을 취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북한의 중국화는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 기반을 약화시켜 통일의 길을 멀게 하고, 남북협력을 통해 활로를 찾으려는 중소기업의 기회를 박탈하는 후유증을 낳을 게 뻔하다.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현안에서 한국의 목소리는 더욱 약해질 것이다. 남북관계 악화와 한국 정부의 대외 발언력 약화가 동시 진행된다는 것은 그간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은 설계 단계부터 흠집투성이다. 북한 무역 총액의 73%(2008년 기준)를 차지하는 중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전혀 효과를 낼 수 없는데도 중국 변수를 처음부터 너무 얕잡아 봤다. 순진하게 중국이 대북 봉쇄에 동참할 것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반대였다. 이로써 이명박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중국화를 촉진하는 ‘한심한’ 정책으로 전락했다.

그래도 이명박 정부는 “시간은 우리 편이다. 조금만 더 압박을 가하면 된다”고 호기로운 말을 되뇌고 있다. 북한의 중국화는 되돌릴 수 없는 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이 재앙을 멈춰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쿠오바디스, 엠비!

오태규 논설위원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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