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별명은 ‘따꺼’다. 중국말로 큰형님이라는 뜻인데, 그와 가까이 일한 부하 관료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소탈하면서도 뚝심 있다고 한다. 윤 장관의 이런 면모는 경제 정책에서도 묻어난다. 지난 2월 취임 뒤 첫 기자회견에서, 당시 3%대였던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 안팎으로 조정했다. 경제전문가들은 그의 용감하고 솔직한 상황 인식을 칭찬했다.
윤 장관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 수장으로 나선 뒤 청와대 쪽도 바뀌었다. ‘경제만큼은 직접 챙기겠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다. 윤 장관 취임 뒤 이 대통령의 어록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경제지표에 영향을 미칠 만한 발언을 일체 하지 않는다. 경제 정책을 펴는 데서는 이 대통령도 윤 장관을 따꺼로 인정한 듯 ….
이 때문인지 이 대통령의 ‘경제 대통령’이란 위상도 흐물흐물 무너지고 있다. 요즘엔 윤 장관이 더 확실하게 무너뜨린다. 이 대통령 집권의 가장 큰 동력인 ‘747’(연평균 7%씩 성장해서 10년 뒤에는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선다는 것) 공약 폐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깃발을 슬그머니 내리는 정도가 아니다. 확실하게 매장시키는 모습이다. 윤 장관은 한국은행이 ‘전기 대비 2.9%’라는 경이적인 성장률 속보치를 발표했는데도 “잘하면 올해 -1%와 0% 사이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점쳤다.
이에 앞서 재정부는 지난 9월 말 내놓은 <2009~20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 실질성장률을 4%, 2011년과 2012년 성장률은 5%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 집권기에 7% 성장은 어렵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확정했다. 1년 전 전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강만수 당시 재정부 장관이 내놓은 재정운용계획에선 2012년에 성장률 전망치가 6.8%로, 딱 한 번 7% 가까이 가기는 했다. 결국 747 공약은, ‘집권기간 연평균 7% 성장’에서 ‘집권 마지막 해에 7% 성장’으로 후퇴하다가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 등으로 변질되더니 이젠 아예 ‘없던 일’이 돼버렸다. 지난해 성장률(2.2%)에다 정부의 2009~2012년 성장 전망치를 포함해 계산하면,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 연평균 성장률은 2.8%다.
정부는 7% 성장을 통해 ‘300만개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약도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못박았다. 허경욱 재정부 제1차관은 4일 한 경제단체 초청강연에서 “올해 일자리가 전년 대비 8만명 정도 줄어들고, 내년에는 15만명 정도 늘어 2년 동안 연평균 7만명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허 차관의 추정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늘어나는 일자리 수가 고작 29만에 그친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말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간담회에서 “여러분들이 747을 공약으로 알고 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공약이 아닌 비전”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2007년 대선공약집 <일류 국가 희망공동체 대한민국>이란 책자엔 ‘7% 성장, 300만개 일자리’가 10대 공약 가운데 첫번째로 나와 있다. 참고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엔 연평균 성장률이 4.4%다. 같은 기간 세계경제의 연평균 성장률(3.9%, 세계은행 통계)보다 0.5%포인트 높다. 상대적으로 선방한 셈이다. 연평균 늘어난 취업자는 24만명이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지난해 우리나라 성장률은 세계경제 평균치(3%)보다 0.8%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나빠진 세계경제’를 들먹이며 “상대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선방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통계다.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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