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상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매스미디어가 가진 사회적 지위 부여의 기능을 잘 이용하는 정치인인 것 같다. 국회의원으로서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 의원은 최근 현직 국무총리가 수도 분할에 따른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 등을 들어 세종시 계획의 수정안 검토 의견을 내놓기 무섭게 원안 고수 의견을 내놓았다. 박 의원은 여당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 계획은 애초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차별화 정책으로 내놓았던 안이다. 충청인들의 기대 속에 표심을 상당 부분 움직였던 것도 사실이다.
수도의 분할이나 이전은 전 국민적 토의 과정을 거쳐 압도적 다수가 찬성해야 할 국가의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대중적 인기 영합을 위한 발언으로는 국론을 분열시킬 뿐이다. 박 의원의 최근 세종시 관련 발언은 여당 조직에도 커다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어찌 보면 박 의원의 발언은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고 하는 야당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박 의원은 왜 바로 이 시점에 그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일까? 다분히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행보가 아닌가 싶다. 박 의원은 전직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 지난 정권에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이룩한 혁혁한 공헌, 평소 보여준 특유의 카리스마 등으로 한나라당 내 대선 후보군 가운데 군계일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이런 위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조급증에서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박 의원이 출중한 대선 후보로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먼저 유신의 악령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가와 베트남 참전 용사들에게 그가 가진 실질적 재산을 내놓고 보상부터 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유신 반대 투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 순수성을 팔고 시류에 영합해 영화를 누린 사람들도 있고, 상당한 보상을 받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노후에 접어든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은 다르다. 경제건설의 기치 아래, 명분도 명예도 없이 열하의 전선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왔지만 살기 위해 고엽제를 뿌린 후유증으로 이젠 병든 몸을 추스르기도 힘들다. 보상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에게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박 의원이 장학재단이라는 이름으로 가지고 있는 정수장학회는 지난 몇 차례의 민주화 정권에서 분명히 법에 규정한 신문·방송 교차소유 금지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위반해 왔다. 여태껏 미디어법은 앞 못 보고 나풀거리는 미물이나 잡을 수 있는 거미줄에 불과했을 뿐이다. 박 의원은 미디어법 통과를 앞두고도 신문·방송의 교차 소유를 무력화하려는 듯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민법상 재단법인인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의 주식 100%와 ㈜문화방송의 주식 30%를 소유하면서 그 배당금으로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장학사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경제개발과 자유세계 수호라는 대의명분에 눌려 자신의 운명을 전쟁터에 내맡겨야 했던 베트남 참전 퇴역군인들, 그리고 뜻 없이 무릎 꿇기를 거부한 유신 반대 민주화 운동가들을 위한 일이 그것이다. 박 의원은 정수장학회 아니면 <문화방송> 주식 지분만이라도 국가에 헌납해 베트남 참전 군인들과 민주화 운동가들 중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이들의 보훈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진정으로 박근혜 의원이 큰 정치인이라면, 매듭을 묶은 자의 후손으로서 매듭을 푸는 일부터 해야 한다.
유일상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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