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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세종시 운명된 아프간 철병 / 정의길

등록 2009-11-12 19:17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고조되던 2007년 7월. 선두 주자였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비비케이(BBK) 사건, 도곡당 땅 의혹 등에 시달리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추월당할 위기에 처했다. 7월19일 아프가니스탄으로 기독교 선교여행을 떠난 분당 샘물교회 신자 23명이 탈레반 세력에게 집단 납치당했다는 충격적 뉴스가 날아들었다.

그 후 41일 동안 국민의 관심은 이들 인질의 안위에 집중됐다. 박 전 대표도 국민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정치공세를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이 후보를 둘러싼 의혹도 잦아들었다. 세간에서는 기독교 신자인 이 후보의 하나님이 도운 것이라는 농담도 나왔다.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것은 한국의 권력지형까지 바꾼 이 사건에 대한 교훈이 지금 간 데가 없기 때문이다.

2명의 목숨까지 잃으며 피랍 41일 만에 끝난 이 사건에서 우리 정부는 공식 대표단을 보내 탈레반 세력과 공식 협상을 하며, 한국군 철병과 기독교 선교 금지를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탈레반 쪽에게 8개 내외의 이면 약속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든 한국 민간인 철수, 인질 수와 동일한 탈레반 정치범의 석방 노력, 탈레반 장악 지역 주민을 위한 병원 등 편의시설 건립 등이다. 한국이 총 200만달러, 혹은 2000만파운드를 냈다는 얘기도 나왔다. 아프간의 인질 사건에서 석방금 지급은 관례이고, 서로 모른 척할 뿐이다.

당시 사태는 탈레반의 처지에서는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 완전한 정치적 복권을 알린 사건이었다. 아프간에서 인질 사태는 비일비재했다. 샘물교회 사건에 앞서 이탈리아 기자와 독일인 민간인 등도 납치돼 풀려나고, 미국과 영국 등의 언론인 납치는 빈번했다. 희생된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시간이 걸려 대부분 풀려났다. 샘물교회 사건처럼 요란하지가 않았다. 인원수가 적은 측면도 있고, 납치된 인질의 해당국인 서방 국가들은 탈레반 쪽과 조용히 교섭할 수 있는 외교채널과 끈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에 아무런 끈이 없는 한국 정부는 처음부터 고위 대표단을 파견해, 사실상 공식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협상에 나선 탈레반 세력은 미군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아프간 정부 관할지역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여는 등 자신들의 정치적 실체를 국제사회에 공인받았다. 특히 한국군 철병과 선교 금지라는 한국 정부와의 공식 협상 내용을 타결시킴으로써, 국제법상 유효한 교전 당사자임을 공인받은 것이다.

한국이 다시 아프간 파병을 발표했다. 탈레반 세력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세계의 관심을 끈 이 사건의 당사자가 약속을 깨고 다시 돌아오는데, 탈레반은 한국을 아프간에 파병한 나라 중의 하나일 뿐으로 단순하게 볼까?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철병했다가 재파병한 사례도 처음이다. 탈레반에게는 자존심의 문제이다. 또 그들에게 한국은 또다른 정치적 선전 효과의 최적 대상자가 될 것이다. 본때를 보여줄 대상으로 찍힌다는거다.

이미 현지에 나간 삼환기업이 파병 발표를 전후해 피습을 당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파병할 경우 인명 피해는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 인명 피해에 더해, 샘물교회 사건을 방불케 하는 탈레반 선동 공세의 대상이 될 수 있음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를 뒤집어엎은 것처럼 아프간 철병도 뒤집어엎었다. 세종시 문제는 국내정치적 부담이지만, 아프간 파병은 이에 더해 외교적 부담까지 짊어져야 할 것이다. 아프간에 파견될 우리 젊은이들이 정말 걱정된다.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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