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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미·중·일 삼국지와 한국 / 오태규

등록 2009-11-16 19:16

오태규  논설위원
오태규 논설위원
냉전 해체 이후 20년 만에 또다시 세계의 전략지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미국의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과 국제적인 신뢰 상실, 월스트리트발 세계 금융위기와 경제 지배력의 약화, 이에 따른 버락 오바마 정권의 탄생이 변화의 시발점이다. 미국의 단독 군사주의와 경제 패권이 퇴조하면서 다극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중국·유럽연합·일본 등 덩치 큰 나라들은 물론, 개발도상국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중 시대(G2) 및 선진 4개국(G4) 체제가 거론되고, 선진 7개국(G7)을 대신해 주요 20개국(G20)이 각광을 받는 것이 단적인 예다.

동북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대전환기에 들어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미·중·일 세 강대국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마치 ‘21세기판 삼국지’를 연상케 한다. 지난 13일 일본을 시작으로 싱가포르→중국→한국으로 이어지는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은 그 첫 대결장이다.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미·일 두 나라가 벌이는 치수 조정 작업이다. 하토야마 유키오의 민주당 정권은 미국에 종속적이었던 자민당 시절과 달리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요구한다. 자민당 정권 때 합의한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일본은 인도양에서 미군을 상대로 한 자위대의 급유 지원 중단, 주일미군지위협정의 개정, 주일미군에 대한 배려 예산의 축소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바마는 하토야마의 제안을 받아 내년에 50년을 맞는 미-일 안보조약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약속했다. 미국이 눈짓만 해도 알아서 기던 예전의 일본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은 경제·정치·군사 면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중국에 대해서도 서로 구애 경쟁을 하고 있다. 중국의 협조 없이는 국제 무대에서 제구실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은 1996년부터 경제 중심으로 진행해온 미-중 경제전략대화를 올 7월 정치·외교 문제까지 포괄하는 전략·경제대화로 격상했다. 중국을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끌어갈 양대 축으로 인정한 것이다. 미국의 중국 중시는 오바마가 이번 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동맹국인 한국·일본에선 만 하루 미만, 중국에선 만 사흘 이상을 머무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일본도 이에 뒤질세라 맹렬하게 중국 끌어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하토야마 정권의 막후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은 지난 11일 중국 공산당과의 교류 모임에서 중-일 관계를 ‘21세기의 인류사적 파트너’라고 규정했다. 또 양국 현안에 대해서도 “(두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국 관계로, 호혜의 정신으로 대한다면 못 넘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일본도 중국과 대립이 아니라 협력 노선으로 나가겠다는 얘기다. 하토야마 총리가 제기한 동아시아공동체와 아시아 중시 외교도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을 고려한 전략이다.

한국은 고래 싸움에서 새우 등이 터지지 않으려면, 안테나를 더욱 높이 세우고 세 마리의 고래가 벌이는 밀고 당기기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주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천동설적 세계관에서 객관적으로 정세를 파악하는 지동설적 세계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북 대화론을 주도하는 미-중의 움직임을 외면하고 나 홀로 압박 정책을 고집하거나, 회원국끼리 돌아가면서 개최하게 되어 있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유치를 단군 이래 최고의 업적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것은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착각에서 나온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강대국 간의 세력 판도가 요동칠수록 작은 나라에 요구되는 것은 냉철한 판단과 앞을 내다보는 지혜, 엄청난 노력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높이 올라 더 멀리 봐야 한다. 위아래뿐 아니라 전후좌우를 꼼꼼히 살펴야 살 수 있다.

오태규 논설위원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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