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언젠가 대학에서 헌법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상당수 법조인들은 5평도 안 되는 자기 서재에 갇혀 있다. 법학 서적 속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어디 법조인뿐이랴. 다른 분야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책이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편견을 고착화시키는 기능도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운찬 총리도 예외는 아니다.
정운찬 총리는 정부기관들이 분리되어 있으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춘다. 그는 정부기관 이전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생각의 지평을 더 넓혀보자. 서울의 권력이 어떤 계기로 인하여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했던가. 경제학 서적에 갇혀 있는 정운찬 총리는 이 부분에 대하여 전혀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서울의 권력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한 것은 과천에 ‘경제부처 중심의 종합청사’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경제 관료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고, 정치인들도 기업인들과 가까이 지내려 하니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주거지가 서울의 기존 중심부와 과천의 중간지점에 형성되었고 그것이 바로 ‘강남으로의 권력 집중’을 가져온 것이다.
문제는 ‘강남으로의 권력 집중’이 과도할 정도로 이루어져 수많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비효율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단일한 계층끼리만 어울리다 보면 다른 계층 사람들에 대해서는 심각한 편견을 가지게 된다. 최근 우리 사회의 계층 갈등이 70년대, 80년대에 비하여 극도로 심해진 것은 이런 주거지 분리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여당 내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의원들이 정면충돌하는 현상도 70년대, 80년대에는 결코 볼 수 없던 일이었다. 그만큼 수도권으로의 권력 집중, 강남으로의 권력 집중이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계층 간 주거지 분리 현상이 심화되면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계층 갈등·소통 부재의 사회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밥상머리에서 형성된 편견, 동료 집단에서 형성된 편견에서 자유로울 만큼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세종시 건설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경제부처 이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세종시 건설이 서울의 유수 대학 이전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그 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경제부처와 서울의 유수 대학을 따라 상당수 중산층과 부유층들이 세종시로 이동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교육서비스업, 문화서비스업이 발전할 것이고, 세종시에 자리를 잡은 대학들이 대전의 각종 첨단산업 연구소들과 교류하게 되면 그 시너지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커질 것이다.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의 자족 기능’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는 것은 그가 70년대, 80년대식 경제관념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역경제 발전의 핵인 클러스터의 중심에는 기업이 아니라 대학과 연구소가 있다. 대학과 연구소가 기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해낸다면 기업은 몰려들게 되어 있다.
물론 정운찬 총리의 우려대로 정부기관 분리가 다소간의 비효율성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부분만을 침소봉대해서는 곤란하다. 교통 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은 여의도-세종시 간의 거리를 여의도-과천 간의 거리에 근접하도록 좁혀 놓을 수 있다. 정운찬 총리가 5평의 서재에서 걸어나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좀더 종합적으로 들여다보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물론 정운찬 총리의 우려대로 정부기관 분리가 다소간의 비효율성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부분만을 침소봉대해서는 곤란하다. 교통 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은 여의도-세종시 간의 거리를 여의도-과천 간의 거리에 근접하도록 좁혀 놓을 수 있다. 정운찬 총리가 5평의 서재에서 걸어나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좀더 종합적으로 들여다보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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