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논설위원
“경찰은 12일 대통령 3선 개헌 반대운동을 주도한 인권운동가를 불법단체 구성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지난 6월 비상사태 선포 직전 군 모욕 혐의로 구속됐다가 석방된 지 하루 만에 다시 체포됐다.”
40년 전인 1969년 3선 개헌 때의 한국 모습이 아니다. 지난 8월 서아프리카 니제르에서 벌어진 일이다. 마마두 탄자 대통령 정부에 체포된 인권운동가 마루 아마두의 변호인은 이를 ‘사법적 탄압’(judicial harassment)이라고 비판했다. 법률과 절차를 흉내 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반대파 탄압에 사법체계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주디셜 허래스먼트’는 현재진행형이다. 10월28일에는 짐바브웨 비정부기구전국연합 의장이 시민단체 실무자 여름캠프에 참석했다가 경찰 허가 없이 정치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11월6일에는 인터넷에서 정부 통계를 프린트했다가 국가기밀 불법소지 혐의로 체포된 중국 인권운동가 린다강이 2년형을 선고받았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30∼40년 전처럼 무지막지하게 간첩 사건을 조작하거나 대학생들에게 사형·무기징역을 선고하진 않는다. 그만큼 민주화된 탓이겠다. 하지만 ‘harassment’의 뜻 그대로 ‘괴롭히고 애먹이기’는 여전하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사건이 꼭 그렇다. 정 전 사장은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여 세금소송을 취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법원의 말을 들었으니 벌을 주라고 법원에 요청한 꼴이다. 조정을 하는 판사가 재판도 맡게 되니, 조정보다 나은 판결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고, 법원은 당연히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라고 애초 이런 이치를 몰랐을 리 없다. 뻔히 알면서도 애를 먹인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고도 그 결과에 대해선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청와대는 입을 다물었다. 기껏 나온 반응이 법에 따라 보상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투다. 칼을 휘두른 검찰은 논공행상을 받은 듯하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정 전 사장을 기소한 조사부장, 전임자가 죄 안 된다며 사표까지 냈던 ‘피디수첩’ 사건을 넘겨받아 기소한 형사6부장,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인 시민단체 회원들을 기소한 첨단범죄수사2부장은 각각 요직으로 영전했다.
반면, 당사자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할 일을 제쳐두거나 휴가를 내면서 재판에 매달려야 했다. 법리상 얼토당토않은 사건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박원순 변호사가 그런 경우다. 무한정의 국고와 법률전담 조직을 앞세운 검찰 등이 ‘일삼아’ 무리한 소송을 벌이는 동안, 당사자들은 따로 시간과 돈을 들여 불안 속에서 명백한 억울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결코 공정한 일이 아니다.
형사소송법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재정신청과 항고 제도로 견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았을 때의 대비책일 뿐이다. 버젓이 기소는 됐지만 정작 살펴보면 범죄 혐의가 충분치 않거나, 기소하지 않아야 할 사건이거나, 누구는 기소하고 누구는 빼준 경우 등 또다른 남용에 대해선 마땅한 견제장치가 없다. 재판에서 공소기각으로 구제하면 된다지만, 검사의 고의를 입증해야 하니 실제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재판에 끌려들어간 것 자체가 당사자에겐 형벌 못지않은 고통이다. 그것만으로도 ‘애먹이고 괴롭힌다’는 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그렇게 국가기관이 저지르는 법희롱(judicial harassment)은 성희롱(sexual harassment)보다 훨씬 큰 해악을 끼친다. 근본적인 견제 제도를 고민해야 할 때다.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