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기 논설위원
역사적인 사업이나 건축물은 대개 권력의 상징이다. 진나라 만리장성이나 수나라 베이징~항저우 대운하가 그렇고,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도 예외는 아니다. 이전 권력자와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치적을 포장하거나 당대에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과도한 역사적 소명 의식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만리장성과 대운하는 나라의 운명을 재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베르사유궁전도 절대왕정의 몰락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에 매달렸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것 때문에 외환위기를 불러들였고, 남북 정상회담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법 대북송금 때문에 치명상을 입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4대 개혁입법 등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임기 후반에 식물정권이 됐다.
이명박 정부가 비슷한 모양새다. 올해 들어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으로 지지도가 살아나고 국정 운영에 힘이 붙는가 싶더니 몇 달 가지 못하고 세종시와 4대강 사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아니 스스로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었다. 이 대통령은 특유의 속도전으로 돌파할 태세다. 숱한 논란 속에 4대강 사업에 착공했고 다음달엔 세종시 수정안도 발표한다.
일을 서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친서민 정책으로 점수를 따놓은데다 내년부터 임기 3년차에 들어선다는 점에서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적절한 개혁 시기를 놓친 노무현 대통령의 전례도 참고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이 대통령의 발언은 약간 위태로워 보인다. 지난달에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내 목표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기초를 닦는 것”이라며 “인기를 끌고 인심을 얻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뭔가 역사적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는 대통령들 특유의 고질병이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세종시와 4대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고 있다. 과연 두 마리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내기를 한다면 안 된다는 쪽에 걸고 싶다. 굳이 뭔가를 하려 한다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계산을 한번 해보자. 4대강 사업비가 22조2000억원이다. 세종시 예산은 23조5000억원에 이른다. 장차 사업비가 불어날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재정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적 비용만이 아니다. 두 가지 사업을 가능하게 하려면 온갖 무리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먼저 세종시로 이전하는 학교, 기업, 연구기관에 특혜를 줘야 한다. 그러려면 10개 혁신도시, 6개 기업도시, 6개 경제자유구역을 달랠 수단이 필요하다. 4대강 사업도 지역차별 얘기가 안 나오도록 챙겨야 한다. 이 대통령은 실제로 지난 22일 광주에서 열린 4대강 사업 기공식에서 해상풍력산업중심지 건설과 광주 연구개발(R&D)특구 지정 등 지역 현안을 대거 약속했다. 인기에 관심 없다는 말과는 정반대 처신이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잡자면 수많은 선심성 사업을 또 벌여야 한다는 말이 된다.
생물 진화 과정에서 거대한 몸집은 멸종으로 가는 첫 단계라는 것이 정설이다. 기동성이 떨어지고 먹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대형 토목사업에 정권의 운명을 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적어도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한 4대강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포기를 선언하면 큰 박수를 받을 일이다. 또 그 정도는 해야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는 세종시 수정론이 설득력을 갖지 않겠는가.
정남기 논설위원jnamki@hani.co.kr
정남기 논설위원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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