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부국장
‘국민과의 대화’를 처음 시작한 건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는 구제금융이라는 초유의 경제위기 속에서 여론을 결집하는 수단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생각해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연설이나 기자회견과는 차원이 달랐다. 택시운전사와 시장 상인, 회사원에 대학생까지 평범한 시민들이 대통령과 한자리에 앉아 묻고 답하는 새로운 형식은 한 편의 텔레비전 쇼를 보는 듯했다. 그 뒤 ‘국민과의 대화’는 대통령이 시민과 소통하는 대표적인 장으로 자리잡았다.
두 전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대통령 역시 이 형식에 상당한 애착을 가진 듯하다. 세종시를 비롯한 굵직굵직한 현안이 산적한 지금,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장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선택했다. 왜 기자회견이 아니고 ‘국민과의 대화’일까?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를 적절히 활용했지만, 기자들과 맞서는 걸 피하진 않았다. 김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를 한 지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싸움을 오히려 즐겼다. 참모들이 예상 질문·답변서를 올리면 그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며 들춰보지도 않고 책상 한귀퉁이로 밀어버렸다.
국민과의 대화가 기자회견보다 쉽다거나 의미가 작다는 건 아니다. 두 가지를 모두 치러본 청와대 홍보수석실 인사들은 “국민과의 대화를 준비하는 게 기자회견 준비보다 몇 배나 힘들다”고 말한다. 기자들은 국정의 핵심 현안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일반 시민들과의 대화에선 언제 어떤 질문이 튀어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자연히 예상 질문·답변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하지만 국민과의 대화는 질문의 깊이와 집요함에서 기자회견을 넘어서기 힘들다. 지금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갖는다고 가정해보자. 사전 조율이 없다면, 거의 모든 질문은 세종시에 집중될 것이다. 왜 말을 바꾼 건지, 그러면 지역 균형발전은 어떻게 되는 건지, 새로 나온 수정안 중 진짜 ‘새로운 게’ 뭔지 등등, 답변의 작은 틈새를 파고들어 대통령의 오장육부를 헤집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폭넓지는 못하지만 논란의 핵심을 깊게 파는 게 기자들이다. 내일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이렇게 세종시에 관한 ‘끝장 토론’이 이뤄질 수 있을까.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고, 사과하고, 이젠 넘어가자는 일이 되풀이되진 않을까.
기자들과 공방을 벌이는 게 몹시 피곤한 일인 건 맞다. 오죽하면 2002년 추수감사절 때, 전통에 따라 백악관 뜰에서 칠면조를 풀어주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칠면조가 너무 신경질적으로 불안해한다. 아마 기자회견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란 농담을 던졌을까. 하지만 세종시처럼 여론이 첨예하게 양분된 사안일수록 대통령은 철저하게 발가벗어야 한다. 예리한 질문에 찢기고 상처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전할 때, 여론은 움직인다.
내일 밤 이 대통령이 그렇게 하길 바라지만,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진 않는다. 그럴 배포가 있다면 기자들과의 맞대결을 피할 리가 없다. 올해 이 대통령의 공식 기자회견은 지난 9월 단 한번뿐이다. 그나마 ‘세종시에 관한 질문은 받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서였다. 아마도 청와대 출입기자들 중엔 이 대통령에게 질문 한번 던질 기회를 얻지 못하고 춘추관(청와대 기자실이 있는 건물)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불쌍한 건 기자들이 아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서 반대편을 설득할 자신이 없는 대통령이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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