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장
세종시 건설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 위한 세종시위원회가 본격 가동되고 있다. 현재의 세종시 안은 격렬한 찬성집단과 반대집단이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 제도가 허용하는 모든 과정들-예컨대 행정수도 이전정책의 대통령 공약화, 격렬한 사회적 갈등, 의회 의결,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여야 간의 재합의 등-을 다 겪은 후에 여야가 그 당시의 정세하에서 타협·조정을 통하여 만든 안이었다.
세종시 재론에는 두 가지 변화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던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행정수도 이전이 아니라 일부 정부부처만 이전함으로써 행정부 분산 등 비효율이 너무 커져 국가적 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는 새로운 논거이다.
전자를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로 바꾸어 보면, 격렬한 갈등 과정을 거쳐 타협·조정된 정책 사안을 원래의 반대 집단이 강력한 다수집단이 되었다고 다시 번복해도 좋은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는 타협·조정된 안이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비효율’이 그 안의 폐지·수정을 요구하는 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던 집단의 입장에서는, 그 비효율이 당시 반대집단의 저항에 의해 원래의 안이 ‘누더기’가 됨으로써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필자가 세종시 수정을 반대하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행정수도 논란이 뜨거웠을 때 캐나다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캐나다의 보기에서 감명을 받아서 그런지, 당시에 필자는 ‘경제수도’와 ‘정치행정수도’를 중앙수도 차원이 아니라, 광역 지자체 수준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하는 ‘급진적’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서구의 많은 나라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며, 한국은 고속철도 등으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므로 더욱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물론 국가적인 정책 의제들이 결정된 이후에 그 절차를 중시해서 꼭 원안대로만 관철될 필요는 없다. 단지 세종시 계획이 전면수정될 경우 향후 유사한 사례에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갈등비용이 너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적대적 갈등 의제’들을 축소하여-찬성과 반대집단이 다 불만이 있지만-‘비(非)적대적 갈등 의제’로 만들어가는 데서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세종시 문제는 민주주의의 타협적 과정을 통해서 후자가 된 것인데, 이를 새롭게 전자, 즉 적대적 갈등 의제로 만드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일반원리라는 각도에서 두 가지 재론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찬성집단과 반대집단이 ‘원래의 의제 지형’으로 돌아가서 재론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행정수도 반대집단이 원래의 자기 입장을 관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찬성집단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에서 재론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입장들이 여당 내부에서도 눈에 띈다. 전자의 예로서는 정진섭 의원의 발언이다. 정 의원은 행정도시의 규모와 관련해 “관습헌법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고려해 대통령과 최소 부처만 서울에 두고 가능한 모든 부처를 행정도시로 옮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물론 ‘수도권 규제의 대대적 완화’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말이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박근혜 의원이 세종시 번복이 아니라 ‘+알파’까지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정부가 제시하는 교육과학 도시안도 이러한 재론의 맥락 속에서 논의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다고 생각한다.
세종시 수정 과정이 향후 한국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세종시 이전 논란을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의 관점에서 한번 조망해 보았으면 좋겠다.
조희연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장
조희연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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