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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교육은 덤인가 / 조상식

등록 2009-11-29 21:34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참여정부 시절 정부 출연 연구과제를 수행해본 교수들 사이에 우스갯소리가 있다. 참여정부는 온통 스터디에만 몰두한 학구파 정권이라고. 나쁘게 해석하면 고민한 노력만큼 실천력이 부재했다는 의미이고, 좋게 보면 국가과제 실행에 있어서 나름대로 사전 기초연구를 중시하면서 최소한 정책결정 과정의 에이비시는 따랐다는 말이다.

그렇다. 참여정부가 기획하고 국회를 통과했던 애초의 세종시 법안이 제아무리 정치적 결정이요 야합이라고 비난받더라도, 정책연구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는 흔적은 역력하다. 반면에 현 정부는 세종시 원안을 뒤집으면서 불과 몇 달 안에 세종시의 성격을, 행정중심 복합도시에서 기업중심도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를 비롯하여 현시대의 유행어인 녹색과 첨단이라는 용어가 붙은 명칭까지 합하면 족히 예닐곱번은 바꿨다. 실로 현 정부 인사들의 ‘자유연상 기법’을 통한 사유실험은 현란할 정도지만, 그 내용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 연구과정에서 논의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게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현 정부가 세종시 원안을 뒤집으면서 동원하는 명분은 논리적 정당성에서나 절차적 정당성에서 원안의 ‘국토균형발전론’에 비해 확연히 초라하고 빈약하다. 현 정부가 여러 지방 자치단체와 여론의 반발에 직면하면서 그 정책적 대응에 조바심까지 엿보인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히 확인된다.

세종시 원안을 뒤집는 데 등장한 유일한 명분은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백년대계’였다. 물론 수도 이전을 ‘관습법상으로’ 위헌이라며 제동을 걸었던 헌법재판소의 ‘천년대계’에 비하면 다소 협소한 안목이지만(!), 정책적인 방향전환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준 것임에 틀림없다. 그 이후 다양한 세종시 성격규정에서 주요한 키워드는 행정, 기업, 과학 그리고 교육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교육도 분명 백년대계에 기초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국가적 사안인데, 세종시 모델 찾기에서 급히 덤으로 첨가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교육과 관련하여 국무총리와 세종시 사업추진 실무진에서 나온 대표적인 언급은 서울대, 고려대, 카이스트 캠퍼스 유치와 자사고 및 특목고 설립이었다. 대학 유치는 우리의 고등교육 여건상 행정 및 연구기관의 분산과 유사한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런데 총리의 입에서 나온 서울대 단과대 신설 발언과 ‘법인화 승인과의 빅딜설’은 그러한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미래 학생수급 예측에 따라 교과부는 나름대로 연차적으로 대학 정원 축소를 계획해 왔다. 그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방대학 구조조정 사업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발상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서울대가 가지는 특수한 위상을 고려할 때, 단과대 신설로 인한 지방대의 위축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아울러 서울대 법인화 승인에 대한 빅딜 의혹은 교육정책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파괴하는 사안이다.

한편 자사고와 특목고 유치 방안은 과열입시경쟁 상황에 있는 왜곡된 중등교육의 여건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입시경쟁 체제에서 학부모의 교육적 동기를 수단으로 세종시의 매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자사고와 특목고 그리고 서울대는, 자식에 대한 학부모의 교육열을 자극하는 데 최적의 조합이 아닌가? 결국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는 현 정부가 교육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이나 근본적인 개혁은 뒷전에 둔 채, 세종시라는 정치적 사안에 교육을 도구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로서는 국민의 욕망구조를 적극 활용하면서 정략적인 정책 추진을 은폐하는 데 교육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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