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년의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았다. 한국이 4.4%, 일본이 1.8%로 그 차가 상당하다. 하지만 소득이 높을수록 잠재성장률이 낮은 것을 감안하면 예상 범위 내라 하겠다.
흥미로운 것은 양국 간의 관점과 자세의 차이다. 한국 정부는 급속한 경기회복을 자신한다. 이에 비해 일본 정부는 내년 상반기도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신중하다. 한국의 한 연구기관은 내년 전망치를 오이시디보다 1% 이상 높은 5.5%로 상향 조정했다. 반면 일본의 연구자들은 더블딥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장래를 낙관해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그 낙관에 가벼움을 느끼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가벼움은 구조적 인식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 일본이 비관하는 이유를 통해 이 문제에 다가가 보자. 일본의 비관은 첫째, 더 이상 수출에 의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의 ‘버블’이 재현될 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최근의 중국 시장 또한 인위적 정책 효과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우리는 어떤가. 환율효과를 제외한다면 우리가 처한 사정은 일본과 본질적으로 다른가.
일본의 비관은 둘째, 내수 창출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올 3분기 들어 일본은 2.3% 성장했다. 문제는 공공투자와 승용차 구입 촉진 등 정책 효과가 3%, 수출 효과가 3%인 데 반해 설비 투자와 서비스 소비 등의 성장 기여도가 마이너스 3.6%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가. 3분기의 2.9% 성장이 설비 투자와 내수 확대에 힘입었다고 하지만,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한 재고조정 효과와 승용차 구입 효과 등을 제외하면 과연 ‘자율적’ 회복이라 장담할 수 있는가.
일본의 비관은 셋째, 이러한 문제가 경기변동상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기업, 제조업, 공급을 중시한 반면 가계, 서비스업, 수요를 경시해 왔다. 그 결과, 출생률 저하로 인구 감소에 빠져들었고 비정규직 증대로 빈곤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는 내수 축소→수출 의존→공급 중시→내수 축소라는 악순환을 낳았다. 우리는 이런 일본보다 구조적 문제가 더 크다. 출생률은 더 낮고 비정규직 비율은 더 높으며 연금제도는 더 미비하다.
하지만 경기회복 덕택에 우리는 벌써 구조적 문제를 망각하기 시작했다. 기획재정부는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올해의 ‘수요 진작’에서 벗어나 내년에는 노동의 효율화, 서비스산업 육성 등 ‘공급능력 확대’에 주력하겠다 한다. 성장잠재력을 키운다는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초점은 그 비전과 방침이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전제한다면 ‘공급 능력 확대’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노동의 효율화’가 양극화를 초래한 점을 차치하더라도 서비스산업에 관한 일본의 경험은 좋은 반면교사가 된다. 1980년대 이래 일본은 내수 창출의 일환으로 줄곧 서비스산업 육성을 외쳐 왔다. 하지만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증가가 연율 3.1%인 데 반해 비제조업은 0.9%에 불과하다. 이에 관해 일본은 ‘수요 경시’가 서비스산업 부진을 낳았다고 반성하고 있다. 수요가 즉각 공급을 창출하는 서비스산업의 특성상, 수요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공급 능력 확충이 힘들고, 결국 가계를 지원하는 것이 서비스산업 육성의 지름길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한쪽으로 ‘서민’을 외치다 다른 쪽으로 ‘공급’을 주장할 일이 아니다. 서민과 중산층에 바탕한 건실한 경제구조를 다질 수 있는 비전과 일관성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하겠다.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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