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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역사교육 지우기? / 송상헌

등록 2009-12-03 21:39

송상헌  공주교대 교수·역사교육
송상헌 공주교대 교수·역사교육
“인간이 역사를 바라볼 때 그가 가진 미래상과 과거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역사교육이 과거를 통해 미래를 기획하는 일임을 말해주는 역사철학자 데이비드 카의 탁월한 통찰이다.

이처럼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역사교육이라면, 교육과정 개편 논의에서도 미래지향적 자세가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역사교육을 미래기획이 아니라 당장 해결해야 하는 현안으로 취급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역사학계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역사교육 강화 기조를 유지할 것과 역사교육 고유의 연계성 원리를 깨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정부 당국에 수차례 요구한 바 있다. 이는 민족과 국가의 미래 역사상을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와 다르지 않다.

지난달 25일 도덕·사회 선택과목 관련 공청회를 보면, 역사교육을 홀대하는 정부의 단견을 엿볼 수 있다. 정부가 역사학계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뀌자마자 역사교과서 서술을 바꾼 것 자체가 얕은 역사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번 교육과정이 뒤죽박죽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번에 제시된 안의 뼈대는 고1 ‘역사’를 필수에서 선택으로 돌리고 선택과목 가운데 ‘한국문화사’ 과목을 폐지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한국사를 전혀 가르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은 고1 때 ‘역사’를 ‘필수’로 배우고 고2, 고3 때 ‘한국문화사’를 ‘선택’할 수 있다.

역사교육은 사회과학과 달리 시간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초중고 연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고1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를 다루는 과목으로, 전근대 한국사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중학교 국사의 후속 교과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고1 ‘역사’가 선택과목이 되면, 중학교에서 배운 전근대 한국사까지만 배우고 마는 학생이 속출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시정하기 위한 대책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다. 역사교육, 특히 자국사 교육의 붕괴라고 할 수 있는 사태가 예상되는 이유이다.

본래 고1 ‘역사’는 중학교 과정과의 ‘통시적’ 연계도 고려했지만 자국사를 세계사적 안목에서 ‘공시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한국사와 세계사를 융합한 교과이다. 그러다보니 국사 교육이 미흡할 수 있고 국사 교육의 기회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한국문화사’를 고2, 고3 선택과목으로 둔 것이다. 고2, 고3 과정의 다른 선택과목인 ‘동아시아사’와 ‘세계사의 이해’도 세계화 시대의 요구로 ‘한국문화사’와 함께 설계된 과목이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 고1 ‘역사’를 선택으로 돌리고 ‘한국문화사’를 삭제한다면 이것은 완성된 건물의 기둥 밑에서 벽돌을 빼내는 것과 같다. 앞으로 고등학교에서 아예 자국사 과목명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입시에 휘둘리는 학교 현장의 세태를 생각할 때, 그나마 친근하게 생각되는 자국사 과목은 선택 기회마저 없게 되고, ‘동아시아사’와 ‘세계사의 이해’는 입시에서 불리하다고 생각돼 선택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일러 역사교육의 붕괴라는 표현 말고 어떤 수사가 가능하겠는가?

대책은 교육과정 총론 차원에서 ‘역사’ 과목의 필수화와 ‘한국문화사’, ‘동아시아사’, ‘세계사의 이해’를 선택과목으로 유지하고 나아가 역사과목 속에서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는 경계선을 두는 것뿐이다. 정책 당국이 국사 교육을 홀대함으로써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던져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송상헌 공주교대 교수·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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