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대학 다닐 때 교련 과목이 있었다. 남학생은 1, 2학년 때 이 과목을 무조건 들어야 하고, 그 대신 군대 갈 때 복무기간을 줄여 줬다. 단, 몇 대째 독자라든가 어떤 질병으로 군 입대 면제자일 경우엔 교련을 받지 않아도 됐다. 나는 어려서부터 눈이 많이 나빴다. 대학 1학년 땐 교련을 받다가 2학년 올라갈 때 병원에서 시력진단서를 끊어 학군단에 제출했더니, 군 입대 면제자여서 교련을 안 받아도 된다고 했다.
그랬는데 4학년 때 신체검사에서 현역 입대 판정이 나왔다. 그사이 눈이 좋아졌을 리가 없다. 시력진단서를 첨부해 병무청에 이의신청을 했더니, ‘귀하의 이의제기에 일리가 있다’며 안과 부분만 다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다시 받았더니 또 현역 판정이 나왔다. 논산훈련소에서도 입대 직전에 안과 부분 정밀검사를 위해 논산 국군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때 안과 정밀검사를 받으러 간 게 나를 포함해 다섯이었다. 나를 제외한 넷은 모두 입대를 안 하고 돌아갔다. 나? 그때 내 병적기록부에 담당관이 찍은 도장이 기억난다. ‘투입’.
학생 시위 관련해서 경찰서 들락날락거리다가 문제 학생으로 찍혀서 현역 입대를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가 5공화국 시절이었다. 어쨌건 현역 입대를 했는데, 문제는 교련을 1년밖에 안 해서 입대 동기들보다 제대를 늦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복무기간이 30개월에, 교련을 1년 했으면 한 달 반, 2년 했으면 석 달을 줄여줬다. 동기들 제대하고 혼자 남은 한 달 반이 어찌 그리 길던지.
최근 군 복무기간을 6개월 줄이기로 한 것을 다시 고쳐 2개월만 줄이자는 법안이 제출돼 논란을 빚고 있다. 2014년까지 육군 기준으로 복무기간 24개월을 18개월로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행에 들어가 이미 복무기간이 21개월로 줄어든 상태다. 2개월 단축 법안이 통과되면 복무기간이 22개월로 다시 늘어난다고 한다. 한번 줄인 걸 다시 늘리는 건데, 남보다 더 복무하는 그 몇 달이 당사자에겐 얼마나 긴 시간일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2개월 단축 법안 지지자들 중엔 국가 전투력이나 안보관의 강화를 내세우는 이도 있는데, 이건 본질과 거리가 멀다. 이 문제는 한 국가의 안보를 위해 필요한 비용을 줄이느냐 늘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비용을 누가 어떻게 지불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개월 단축 법안의 가장 큰 이유는, 6개월을 단축하면 지금의 저출산 추세에서 나중에 병력이 현저히 줄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2개월만 줄이자는 이 법안은, 다시 말하면 국가 안보 비용을 지금처럼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노력봉사로 채우자는 것이다. 징용되는 병력이 줄면 직업군인을 늘리면 되는데 그렇게 세금을 더 쓰는 건 이 법안의 안중에 없다. 기성세대가 안보를 위해 세금을 더 부담하는 일은 안 하겠다는 것이다.
생각을 바꿔 보자. 한 나라의 안보 비용 대부분을 젊은이들의 무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지금 같은 시스템은 일종의 세대간 착취 아닌가. 수년 전 연천 총기사고 뒤로 모병제 논의가 잠시 일더니 수그러들고 말았다. 세금의 급격한 증가 등 이런저런 이유로 모병제는 아직 이르다 치자. 그래도 안보 비용을, 젊은이들의 노력봉사로 채우는 걸 조금이라도 줄이고 기성세대가 세금으로 충당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게 상식에 맞는다. 그 조그만 변화에 따르는 돈마저 아깝다고 시계를 거꾸로 돌리겠다는 건 기성세대의 노탐이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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