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영 사회부문 법조팀장
도처에서 승자의 노래와 패자의 비탄이 들리는 것 같다. 철도공사 파업, 공무원노조 설립 신고, 한국노동연구원 직장폐쇄, 노동관계법 협상, 한국방송 낙하산 사장 선임, 이 모든 문제에서 노동은 패배를 강요당하고 있다. 권력의 전 영역이 특정 계급의 이익을 위해 다른 계급을 짓누르는 일이 이처럼 집중적으로 진행된 때가 있었는가 가물가물하다.
재벌기업 사장 출신이 정권을 잡았을 때 예고된 장면들이긴 하나, 겉치레로라도 상식과 형평에 신경 쓰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계급독재라는 진부한 말이 먼지를 걷어낸 책의 제목처럼 갑자기 뚜렷해지고 있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노골적인 계급 입법이다. 호의의 존재 여부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을 형벌권 안으로 끌어들인 것부터 입법론적으로 어불성설이다. 비유로 비판하려 해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아리안족의 순수 혈통을 지키기 위해 독일인과 유대인의 성관계를 처벌하겠다는 나치의 뉘른베르크법이 원리상 그나마 비슷하다. 서로 좋아서 한 ‘호혜적’ 행위를 처벌한다는 이 법은 비웃음거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현행법이 처벌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뇌물공여, 배임증재, 선거에서의 금품 제공 등 기본적으로 뇌물성 금품 공여다. 그 외에 금품 지원을 처벌하는 것은 국가보안법(9조 ‘편의제공’) 정도다. 금품 수수자가 간첩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공자를 처벌하도록 한 규정이다. 노조 전임자를 간첩만큼이나 배척과 제거 대상으로 보지 않고서는 도입하기 어려운 법률조항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통령이 진압 사령관을 자처한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는 반노조 진영이 가장 통쾌해했을 법한 사건이다. 이들은 대형 공기업노조를 굴복시킨 것이 마거릿 대처가 1985년 광부노조를 꺾은 것처럼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자평할지도 모르겠다. 영국 광부노조는 파업 돌입을 위한 전국 단위의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아 대처에게 ‘법의 지배냐 폭도의 지배냐’라는 선동의 빌미를 줬다. 한국의 철도노조는 조정과 파업 찬반투표라는 쟁의행위 개시 요건을 갖춰 불법성 시비를 차단했다. 그런데도 말꼬리 잡고 늘어져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8일 만에 파업을 접게 했으니 청출어람이라고 할 만하다.
뒤처리를 맡은 검찰과 법원 등 사법권력도 뒤지지 않는다. 따질 겨를도 없이 파업에는 불법 딱지를 붙이고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내준다. 그렇다면 자본 쪽은 사법권력한테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 공교롭게도 지금 검찰에는 대표적인 재계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그 자제들이 연루된 효성그룹 비자금 및 미국 부동산 구입 의혹 사건과 오시아이(OCI) 주식 거래 미공개정보 이용 사건이 계류돼 있다. 미운털이 박힌 쪽은 사무실부터 털고 보는 수사기관의 적극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예상대로 두 사건의 결과는 함흥차사다. 사법권력의 계급적 성격은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에서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입법, 행정, 사법의 노동에 대한 협공이 어찌 이리도 일사불란한지는 간단한 문제다. 기본적으로 권력분립론 차원에서 살펴볼 일이다. 한국의 사법권력은 충분히 보수적이고, 조건이 갖춰지면 극우적 성격도 발현한다. 고정변수에 가까운 것이다. 선출 권력인 나머지 두 권력,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이 헌법 정신을 무시하고 법률을 자신들에게 맞도록 구부리는 파당의 손아귀에 떨어지면 반노동 삼위일체가 완성된다. 이 삼위일체는 그들이 꿈꾸는 자본의 천년왕국을 향해 나아가려 할 것이며, 더 많은 제물을 요구할 것이다.
이본영 사회부문 법조팀장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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