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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핵보다 강한 무기는 사랑이다 / 배태영

등록 2009-12-09 21:27

배태영  경희대 명예교수
배태영 경희대 명예교수
‘삼손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기원전 11세기 초 이스라엘 왕정이 시작되기 전에 백성을 적들로부터 구출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영웅들을 사사(士師)라고 하는데, 삼손은 그 마지막 사사이다. 그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맨손으로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이 찢고, 나귀의 턱뼈로 1000명의 적을 죽이는 등 그의 힘 앞에 블레셋 사람들이 꼼짝을 못했다.

그러나 미모의 블레셋 여인 델릴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자고 있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라 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게 만들어 그의 두 눈을 뽑아 버리고, 블레셋 가사로 끌고 가 두 줄의 놋사슬에 매어 옥에서 연자매를 돌리는 체형을 가했다.

삼손은 다시 한번 힘을 달라고 기도해서 이전의 힘을 회복하고 신전을 버티고 있는 두 기둥에 양손을 대어 있는 힘을 다해서 밀었다. 그리하여 그 거대한 신전이 무너져 비록 삼손 자신도 죽었지만 그가 생전에 죽였던 것보다 더 많은 블레셋 사람을 이 신전에서 죽였다. 이와 같이 “나 죽고 너 죽자” 하는 이상심리를 ‘삼손 콤플렉스’라고 한다.

그런데 삼손처럼 혼자 힘으로 크려고 애쓰며 고독한 걸음을 걸어온 것으로 치면 세계에서 북한을 능가할 나라가 없다. 물론 정권 수립 초기에는 소련과 중국이 경제지원을 해주고 한국전쟁 때는 참전까지 해서 북한을 적극 도와주었지만, 1965년 주체를 공식화하고, 68년부터 주체사상을 확립한 이래 40여년을 북한은 거의 혼자 지내왔다. ‘우리식 사회주의’ ‘자력갱생’을 고집하며 폐쇄의 벽을 높였다. 그래서 냉전이 끝나고 사회주의국가에 밀어닥친 자유와 민주의 바람도 북한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고, 중국에서 힘차게 흔들어댄 개혁·개방의 깃발도 북한 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수령이 직접 선언한 주체를 뒤엎지는 못했다. 그 불멸의 주체 때문에 수많은 주민이 굶어죽는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주체사상을 거둬들일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곧 지금까지 이어온 정권의 명분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체사상을 확산해 나가기 위해 선군정치가 필요했고 선군정치를 하려니 핵 개발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체제 보위가 우선이다. 그러한 그들에게 평화를 보장하는 아무런 체계가 수립되지 않은 채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그들로서는 두 눈이 뽑히고 더듬거리는 삼손에게 겨우 다시 자라난 머리카락을 자르라는 요구만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것이다.

앞으로 북핵 문제가 어떻게 귀결되든 간에 우리로서는 그들이 극도의 고립감에 빠지지 않도록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남아도는 쌀을 북한으로 보내 영양실조에 걸려 허덕이는 그들을 도와주자. 조상에게 물려받은 같은 땅에 살면서도 한쪽은 잘살아서 평균수명이 79살인데 다른 한쪽은 못 먹어 62살밖에 안 된다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인도주의이기에 앞서 한 피를 받은 형제애로, 계산적인 ‘햇볕’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그들의 외로움을 어루만져주자.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북한의 핵이 아니라 우리의 매몰찬 이기주의이다. 핵보다 강한 무기는 사랑이요, 사랑의 힘은 핵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핵 확산을 막는 것은 북한보다 몇 만 배의 파괴력을 가진 핵을 수천 개나 보유하고 있는 핵 강국의 몫이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오직 남과 북의 공생공영이다. 사랑의 손을 펴자.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잠언)

배태영 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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