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선임논설위원
본격적인 겨울 한파가 시작된 지난 15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성당’에서는 어김없이 용산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생명평화미사가 열렸다.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아보려고 간이천막을 설치했지만 지붕만 있는 천막으로는 옷 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막아낼 수 없었다. 그래도 방한모에 무릎덮개로 온몸을 싸맨 채 미사에 참여한 100여명의 시민들은 꼿꼿했다.
올해 1월20일 용산참사가 벌어진 이후 화사했던 봄이 왔다 가고, 폭풍우 몰아치던 여름도 지나고, 은행잎 노랗게 물들던 가을마저 물러난 뒤 이제 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330여일이 흘렀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천막 농성은 여전히 계속되고, 참사가 난 남일당 건물 옆 골목의 ‘남일당 성당’에선 매일 저녁 7시 용산참사 희생자 추모미사가 열린다. 미사 때마다 검찰이 감추고 있는 3000쪽 수사 기록의 공개를 촉구하는 기도가 이어지고, 미사가 끝나면 문정현 신부는 용산참사와 관련된 책이나 물건을 판다. 그날 문 신부의 오른손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이 만든 파란색의 <쫄지마, 형사절차!>, 왼손에는 용산참사 추모글을 엮은 노란색의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가 들려 있었다.
용산참사 희생자 5명의 유족은 아직도 검은 상복을 벗지 못한 채 상주 노릇을 하고 있다. 미사 때 앞자리에 앉아 있던 유족들은 미사가 끝나면 참사가 난 남일당 건물 1층에 마련된 분향소로 가 조문객을 맞는다. 몇몇 시민들이 촛불을 희생자 영정 앞에 놓으며 명복을 빈다. 그러기를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가끔 얼굴을 내비치던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의 모습은 이제 눈에 띄지 않는다. 취임하자마자 용산참사를 해결하겠다며 분향소를 찾았던 정운찬 총리도 ‘세종시 뒤집기’에 매달려 용산은 까맣게 잊은 듯하다. 다들 송년회다 망년회다 하면서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속으로 바쁜 걸음을 총총 옮길 때면 남일당은 더욱 스산해진다. 우리 모두 그렇게 자기 일상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을 때, 억울하게 숨져간 영혼들은 아직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용산참사 현장을 맴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입만 열면 친서민을 외친다. 때로는 법치와 국격(나라의 품격)을 거론하기도 한다. 용산을 저렇게 놔둔 채 친서민, 국격이라는 말을 버젓이 입에 올리는 그의 위선과 뻔뻔함에 할 말을 잊는다. 정작 더 두려운 건 그의 위선과 뻔뻔함에 우리가 점점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일상에 쫓겨 용산참사를 점차 잊어가고 있는 우리는 그와 얼마나 다를까.
“사람 여섯이 불에 타 죽었다”고 울부짖어도 모른 척 외면하는 민주시민의 나라, 덕수궁 분향소에서 5시간을 기다려 조문하고 흐느낄 줄은 알아도, 겨우 15분 거리, 1분을 기다릴 필요도 없는 용산 분향소로는 발길 돌릴 줄 모르는 이중감정의 나라, 그렇게 불에 탄 시신이 다섯 달째 냉동고에 처박혀 있어도, 눈만 꿈뻑꿈뻑대는 메마른 양심의 나라.(노순택, 히틀러만이 사람을 산 채로 태워 죽인 것은 아니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중에서) 우리는 지금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남일당 성당 어귀에도 겨울철 단골손님인 군고구마 장수가 찾아왔다. 알록달록 예쁘게 색칠을 한 고구마 굽는 드럼통과 자그마한 굴뚝이 참사 현장의 스산함을 덜어준다. 그 드럼통 옆면엔 빙 둘러가며 여덟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용산참사 해결하라.” 오늘로 용산참사 333일째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7시면 남일당 성당에선 용산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생명평화미사가 열린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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