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과외수업에 게으름을 피우는 아들을 아버지가 나무란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공부에 충실해야 한다.” 아들이 되묻는다. “아버지, 대학은 가서 뭐하게요?” 아버지는 정말 모르느냐는 듯 목청을 돋운다. “그래야, 너도 과외 선생 해서 돈을 벌지….” 오래전 한 일간지 시사만화에 실린 이야기의 줄거리를 되살려본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는 진짜 목적을 잊게 하는 것은 타성이다. 하지만 타성은 누군가에 의해 조장되기도 한다. 오늘날 한 나라 경제정책의 최종 목적이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높이는 것인 양 말하는 이들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세계 금융위기 뒤 우리나라는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빠른 ‘회복’을 한 나라로 꼽힌다. 성장률 수치로만 보면 정말 그렇다. 올해 3분기의 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3.2%로, 연율로 10%가 넘는다. 3분기의 국내총생산액은 지난해 3분기에 견줘서도 0.9% 많다. 그런데 그런 성장률이 가계살림을 펴게 했는가? 1~3분기까지의 실질 국내총생산액은 지난해에 견줘 1.8% 줄었다. 하지만 전국가구의 평균 실질소득은 같은 기간 3.1% 감소했다. 하위 10% 계층의 실질소득은 무려 14.9%나 줄었고, 그 바로 위 10~20% 계층도 4.3% 줄었다. 그들에겐 회복이란 말 자체가 우스울지도 모른다. 성장률을 끌어올리느라 정부가 진 빚은 어마어마하다. 지난해 관리대상수지 적자는 15조6000억원, 올 들어 3분기까지 적자액은 48조9000억원이었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금융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데 돈이 든 게 아니다. 대부분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차라리 그 돈을 실업자나 저소득층에게 그냥 다 나눠줬으면 어떻게 됐을까? 정답은 아닐지라도 상상력을 발휘해 따져봐야 한다. ‘성장률’ 수치 자체가 어찌 궁극적인 목적이겠는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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