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지 벌써 2년 가까이 됐다. 국민들에게는 정말 힘든 나날이었다. 동시에 국민들이 학습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서민을 위한 정권인지 아니면 일부 권세가와 부유층을 위한 정권인지,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와 법치를 뿌리내릴 정권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와 법치의 탈을 쓴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후예인지, 선진국 도약의 비전과 능력을 갖춘 정권인지 아니면 양극화를 심화시켜 장기불황의 나락으로 끌고 갈 정권인지 말이다.
특히 올해는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전직 대통령 두 분을 연달아 떠나보냈고,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고자 노력했던 분이 도리어 그 희생양이 된 아이러니를 목격해야만 했다. 야권을 향한 정치보복은 현재도 진행형이고, 정권의 필요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특히 전 국무총리와 현 야당대표를 겨냥한 정치보복은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것일 뿐만 아니라, 전직 국세청장 사건을 은폐 또는 물타기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기만, 불법, 탈법으로 점철된 4대강 사업도 이 정권의 본색을 여실히 드러낸다. 환경파괴의 위험을 내포하는 운하사업임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기만이요, 환경영향평가 등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강행하기 때문에 불법이요, 국책사업에 국회의 예산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수자원공사의 돈까지 끌어들이기 때문에 탈법이다. 국회의 예산심의가 끝나기도 전에 벌써 삽질을 시작하는 배짱과 야당이 예산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내년 ‘전체 공무원 봉급 지급 유보’를 들먹이는 무지한 협박에 아예 할 말을 잃게 된다.
예산안 처리에 다급해진 정권은 급기야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이 여러 차례 대운하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만큼 야당이 예산안 처리에 협조해줄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세종시 문제 등에서 이미 ‘양치기 소년’이 돼버린 정권의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 국정의 최고책임자 스스로 ‘대운하는 다음 정권의 문제’라고까지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 예산안 처리 지연의 책임을 야당에 전가하는 수법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또한 현 정권은 연말에 이례적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만을 단독으로 특별사면·복권시켰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올림픽위원 자격을 회복할 수 있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건희 전 회장이 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된 지 불과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현 정권이 그동안 내세운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면서까지 사면·복권시켜야 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가 나선다고 겨울올림픽 유치가 보장되는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정말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인지 삼성공화국인지 묻고 싶다.
이 정권은 추운 겨울 오갈 데 없는 용산 철거민들을 거리로 내쫓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인명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올 한해를 열었다. 남은 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려고 한 사람은 아직까지 이 정권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른바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정부·여당의 구호가 부끄럽지 않은가.
오는 해는 호랑이해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이 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이다. 폭정을 피해 고향을 떠나 호랑이 많은 깊은 산골로 들어갔다가, 가족들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가여운 여인을 두고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다. 호랑이해로 바뀌는 세밑에 이 말이 연상되는 것은 어인 연유인가.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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