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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새해특별기고] 사람이 곧 문화다 / 최일남

등록 2009-12-31 19:42수정 2009-12-31 19:43

최일남 소설가
최일남 소설가
- 백범이 꿈꾼 ‘아름다운 나라’를 다시 읽다 -




<김구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다>를 읽었다. 최근에 출간된 아이들을 위한 인물 이야기인데, 다른 사람 아닌 백범의, 그것도 아름다운 나라에 대한 꿈은 과연 어떤 모양일까? 모처럼 어린 독자로 돌아가 머리에 새로 그림을 그리듯 찬찬히 책장을 넘겼으나 쉽지 않았다. 밤을 도와 <백범일지>를 탐독한 추억과 김신 선생 댁에서 임시정부 국무원 용지에 깨알같이 쓴, 어미가 ‘거시다’ ‘임니다’인 국한문 혼용 원고를 직접 본 감동 등이 꾸역꾸역 되살아난 탓이다. 아슴푸레 떠오른 선지식의 역사가 노년의 아이 되기 기분을 방해한 셈이다.

옛이야기처럼 구수하게 써내려간 책은 ‘청년백범’이라는 연구모임이 짓고 박시백 화백이 그림을 그리되 기왕의 위인전과 달랐다. 재주가 출중했다거나 슬기롭고 용감했다는 따위 될 성부른 나무의 떡잎 칭찬은 하나도 없고 개구쟁이 ‘창암이’(백범 아명)의 평범한 면모와 낭패를 여지없이 까발렸다. 유·청년 시절 묘사 중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보아도 천하고 가난하고 흉한 모습뿐이었습니다. 짐승처럼 산다면 모를까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하자면 ‘마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믿으며 의리, 판단, 실행, 계속을 목표로 삼는다. 종당엔 ‘백범’으로 호를 지어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만고에 유명한, ‘부강한 나라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소망하고 나섰다. ‘높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나라를.

좀처럼 정부 비판 기사를 찾기 힘든 메이저 언론에서 힘을 얻는가. 자신에 넘치는 만큼 반대편 사람을 무시하고 시삐 본다

더 보태고 뺄 것이 없는 애국 애족의 화신이자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적에도 늘 우파를 대표했던 본받을 만한 왕보수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돌아온 조국에서 ‘의사(擬似) 민족주의’ 혐의에 좌파 모함까지 받았다. 정치적 마이너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전혀 없는 승자독식 사회의 야멸친 농단이자 해코지였다. 10만원권 지폐의 초상 계획도 석연찮은 이유로 취소되었다.


문제는 이런 기류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엠비정부 들어 더욱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수틀리면 색깔론을 펴 탈이다. 그런다고 한 시대 두 시대 저쪽 일을 끌어내다 못해 견강부회를 놀 참이냐고 윽박지를 수도 있겠으나 내림인즉 비슷하다. 어느 하늘 아래 이다지도 길고 끈질긴 입말의 속절없는 갈등이 또 있을까 싶다. 친구지간에도 서로 어느 편인가를 살피며 자칫 얼굴을 붉히기 쉽다. 오죽하면 정치 담론을 아예 금기사항으로 못박는 동창회 또한 쌨다.

모종의 조건반사 현상이라고나 할까. 색깔 소리만 나오면 애먼 사람 잡는다고 질색하는 재미가 들어 일단 해놓고 보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만이지 웬 호들갑이냐고 여유를 부리는 사이에, 듣는 쪽은 듣는 쪽대로 남우세스러운 감정마저 느끼지 말란 법 없다. 현대사의 슬픈 곡절과 짙은 음영을 순식간에 상기시키는, 많이 배운 이들이 어쩌자고 더 선호하는 색칠 이전에 ‘꼴통 보수’가 물론 있었다. 하지만 파괴력이나 약발은 당국의 협조가 어느 쪽으로 더 쏠리느냐에 달려 있고 그 차이는 말도 못하게 크다.

작정하고 골수 사회주의 이념을 키우고 전파를 마음먹는다면 모를까 보통사람들의 일상 언행은 실상 어느 한쪽에 빳빳이 기울기도 어렵다. 아침에는 보수적으로 반대하다가 저녁엔 진보적으로 찬성하는 둥 생각이 오락가락 바뀌는 수가 일상에 흔하다. 지극히 일방적이고 쓸데없이 고집만 피우는 북한에 학질을 떼다가도 너그럽게 도와줘야지 어쩌겠느냐는 선의의 발동에 절로 너그러워지는 날도 있다.

그래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실용’을 일단은 주목했다. 하나 돌아가는 낌새가 오히려 심상찮다. 무엇에 쫓기듯 본인과 주변 인물들의 언행이 갈수록 드세고 뻐세다. 가다가는 ‘그럽시다’ 하고 못 이기는 척 대통령의 지분도 조금 내주고 꺾이는 멋도 있어야 보는 맛도 나겠는데 영 아니다. 집권 초기 전라도에 가서 뽑은 전봇대같이 직립을 일삼아 타협, 토론, 양보, 악수로 난제를 조금이나마 푸는 수완을 보기 어렵다.


그림 이보름 boreumlee@hanmail.net
그림 이보름 boreumlee@hanmail.net
가다가는 ‘그럽시다’ 하고 못 이기는 척 대통령의 지분도 조금 내주고 꺾이는 멋도 있어야 보는 맛도 나겠는데 영 아니다

4대강을 왜 임기 안에 꼭 마치려 하는가. 그거야말로 백년대계 중에도 으뜸으로 쳐야 할 민족 초유의 일대 역사(役事) 아닌가. 정부는 그걸 제2의 청계천 사업으로 규정했다지만, 애초에 청계천 ‘복원’을 꿈꾼 박경리 선생은 선조들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조경’(造景)으로 ‘놀이터’로 망쳤다고 개탄했다. 원주 토지문화관에 관련 학자들이 모여 두 차례나 세미나를 연 사정을 나도 쬐끔 귀동냥해서 안다. 당시만 해도 10년 후에나 가능할까? 20년 후에나 가능할까? 전망하며 토의에 토의를 거듭했다. 그게 발단이 되어 시작한 것이 청계천 복원사업이다. 한데 결과는 ‘개발’이었다. 박 선생이 쓴 <생명의 아픔> 가운데 한 구절을 옮긴다.

“미력이나마 보태게 된 내 처지가 한탄스럽다.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 차라리 그냥 두었더라면 슬기로운 인물이 나타나서 청계천을 명실공히 복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청계천, 몸에 맞지 않는 조경의 의상을 입고 한심스러워할 청계천, 몇 년은 더 벌어먹고 살았을 텐데, 노점상인들이 안타깝다.”(소제목 ‘청계천은 복원 아닌 개발이었나’)

그랬으므로 4대강은 긴 안목으로 천천히 진행하기를 바랐다. 몸소 뛴 건설현장 경험이 아무리 막강하기로 수많은 전문학자와 직능단체의 반대에도 귀를 기울이는 대통령으로서의 아량과 열린 자세를 보고 싶었거늘, 방송국 스튜디오에 소수의 청중을 모아놓고 세계 수준인 우리 건설 기술을 믿으라는 말만 일방적으로 했다.

그래도 적잖은 성과는 거뒀을 것으로 믿는다. 역대 대통령들과는 판이한 ‘직능적 카리스마’ 덕이다.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우리 사회는 건설업에 특히 호의적이었다. 중동특수로 어깨를 펴고, ‘불도저’라는 별칭으로 건장한 남성성을 평가하며 정주영 ‘왕회장’을 불도저의 상징으로 꼽았다. 헌 배를 사서 댐을 마무리하고, 평양으로 소 떼를 모는 ‘신화’를 만들었으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는 자기 생애의 굴절을 어떻게 돌파했는가에 중점을 둔 것이어서 정 회장을 수식하는 신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50대 서울시장, 60대 대통령이 된 자신을 ‘샐러리맨의 신화’라고 부르는데 본인은 그걸 신화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뜨거운 의지로 그때그때 안팎의 위기에 도전하고 돌파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굳게 믿는다. “기업 경영이든 국가 경영이든 본질은 같다”고.

백범은 부강한 나라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높은 문화가 살아숨쉬는 나라를 꿈꿨다

대통령 이후엔 그런 믿음을 확집으로 굳힌 듯하다. 좀처럼 정부 비판 기사를 찾기 힘든 메이저 언론에서 힘을 얻는가. 자신에 넘치는 만큼 반대편 사람을 무시하고 시삐 본다.

예술인 기관장들을 모조리 솎아내고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젊은 방송인을 도중하차시키는 상황에 ‘높은 문화’를 어찌 기대하랴. 총체적 발상이 너무 옹색하다. 아무리 보아도 점잖고 훌륭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아름다운 커피’와 ‘아름다운 가게’ 사업도 도왔는데, 국가정보원의 시민단체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가 국가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이런 일련의 현실은 ‘잃어버린 10년’ 되찾기 의식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일본에서 그것은 경제불황을 일컫는다. 내친김에 일본 정신을 재확인하자는 뜻도 섞여 있었다. 세계야구클래식(WBC)의 일본 대표팀을 이끌었던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사무라이 닛폰’을 새삼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인데, 우리는 그걸 정치로 바꿔 요긴하게 써먹었다.

대통령이 직접 현지로 가서 아랍에미리트 원자력발전사업을 따내기 잘했다. 환경문제 차원에서는 이론이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다만 희망한다. 경제 제일주의도 좋지만 사람이 곧 문화라는 의식에 더 좀 힘쓰기를. 백범이 한 말에 ‘선비는 죽일지언정 욕을 보여서는 안 된다’(士可殺 不可辱)는 것이 있다.(<예기>)

최일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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