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정부에서 일할 때만큼 불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념적으로 극우적 성향이어서, 혹은 정치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사사건건 참여정부를 친북 좌파로 몰아세우는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정말 당혹스러웠던 것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보여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었다.
이는 한-미 관계에서 두드러졌는데, 바로 4년 전인 2006년 1월에 맺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관련 한-미 합의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한-미 안보 현안 중 참여정부가 가장 긴 시간을 끌며 협상을 벌인 이 문제는 다음의 두 조항의 합의로 끝을 맺었다. 1.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군사전략 변혁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2.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요컨대, 미국이 자국의 필요에 의해 주한미군을 다른 지역으로 차출하려 할 때, 한국 정부는 이를 수용하되, 동북아 지역으로의 차출이나 전개 등은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제한적 수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이 합의가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여 한국 정부가 안보주권을 포기하고, 미군의 동북아 분쟁지역 개입의 길을 열어놓았다며 진보진영으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합의가 마치 미국의 세계전략에 한국 안보가 수동적으로 편입된 계기인 양 말한다.
사실 제한된 수의 해외주둔 미군을 효과적으로 운용한다는 구상 아래 제시된 전략적 유연성에 바탕을 둔 미군의 새로운 군사변혁은 미군이 주둔하는 다른 지역에서는 협상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리고 변화된 국제환경 속에서 주한미군을 대북 억지력 이외에는 활용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한반도 정세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미국이 이 문제를 우리 측에 제기하자 숙고 끝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원칙적으로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되, 그로 인해 미래 동북아에서 한국 국민이 원하지 않는 분쟁에 자동적으로 말려들거나 개입하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라”는 지침을 내렸다. 매우 껄끄러운 일이었지만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에 대만사태 발생 시 주한미군의 발진 혹은 차출 등이 한국 안보에 미칠 위험성을 설명하며, 우리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제한을 가하려는 이유를 솔직하게 전달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3월 공군사관학교 연설에서 이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한·미 양국은 밀고 당기기를 거듭한 끝에 우리의 주권 및 안전과 미국의 이해를 모두 고려한 두 개의 문항에 합의하게 되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한국 외교의 굴욕이라는 식의 오해를 하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세 명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곧이 믿게 된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 안의 불신이 얼마나 큰 오해를 낳는가를 뼈저리게 느끼며, 정책 담당자로서 이 불신의 벽을 허물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
굳이 이 시점에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회고하며 불신의 벽 운운하는 이유는 하나다. 위기에 내몰린 한국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다시 진전시키기 위해 민주진영의 대단결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 상대에 대한 신뢰와 불신을 넘어서는 포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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