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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세종시 백지화는 균형 백지화 / 권용우

등록 2010-01-12 19:21수정 2010-01-13 11:07

권용우 성신여대 교수·도시지리학
권용우 성신여대 교수·도시지리학
세종시 백지화 안이 온 나라를 싸움터로 만들고 있다. 세종시 원안 지지자는 ‘백지화는 궤변’이라고 단정한다. 백지화 안을 들고 나온 정부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한다.

2005년 2월 국회에서 행정도시 논의가 있었다. 청와대, 외교통상부, 통일부, 국방부 등은 서울에 남고, 나머지는 세종시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6~7개 부처를 세종시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의 논리가 현재 세종시 이주 예정 부처의 틀이 되었다. 그런데 2010년 1월 한나라당과 맥을 같이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아예 행정부처를 이전하지 말자’는 말이 터져나오니 어리둥절하다.

행정부처 이전 백지화론은 다음의 세 가지 문제점을 던진다. 첫째는 혁신도시 궤멸 가능성이다. 그것은 세종시로 갈 9부2처2청과 그 산하 기관 등 36개 기관, 그리고 10개 혁신도시로 갈 140여개 산하기관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세종시 이전 예정인 16개 국책연구기관은 그대로 간다고 한다. 이것을 정부의 ‘효율성’ 논리에 맞춰 본다. 9부2처2청 등 36개 기관은 남아 ‘효율성’을 도모할 테니, 16개 국책연구기관은 가서 ‘비효율’을 감내하라는 내용이 된다. 정부 스스로 논리상의 모순을 보여준다.

잔류하는 36개 기관은 더 큰 파장을 불러온다. “행정기관이 내려가면 그에 연관된 기업이 따라가고 지역혁신 역량이 덧붙여져” 혁신도시가 된다는 것이 균형발전 논리다. 36개 기관이 가지 않는데, 10개 혁신도시로 옮길 140여개 산하기관이 내려갈 명분이 없다. 달리 말하면 “정부 산하기관이 내려와 지역을 살린다”는 혁신 균형논리는 송두리째 짓밟히게 되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9부2처2청 이전 백지화는 혁신도시 궤멸로 이어져 균형 백지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세종시의 빨대 현상과 특혜 시비다. 행정기관 대신 몇 개 기업을 세종시로 가져오는 것은 평범한 기업 새도시를 하나 더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대체로 기업은 “각종 혜택도 받고 수도권의 근거리”에 입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것은 영남, 호남, 강원, 제주로 가려던 기업들이 ‘혜택도 있고 상대적으로 수도권과 가까운’ 세종시로 몰리는 빨대 현상으로 설명된다.

세종시에 더 들어갈 기업 용지가 없어 빨대 현상이 기우라고 폄하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정부는 자족용지를 20.7%로 높였다. 그러나 녹지와 공공용지를 제외한 세종시의 34.3% 땅은 도시계획 변경으로 얼마든지 자족용지로 전환될 수 있다. 또한 힘 있는 기업에 토지 수용비보다 턱없이 싼 가격으로 원형지를 제공함으로써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최악의 경우 수천억원의 손실보전액을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도 가능하다.

셋째는 정책 신뢰의 실종이다. 현 정부는 각종 선거에서 수없이 세종시 건설을 약속해 목표를 이뤘다. 목표를 달성했다고 느닷없이 세종시 건설을 백지화하면 향후 국민은 정부 정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현재 세종시 건설예산 22조5000억원 가운데 24%인 5조4000억원이 집행되었고, 전체 공정의 20% 정도가 진행되고 있다. 어마어마한 국가사업을 하루아침에 뒤집어버린 마당에 이른바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의 약속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지난 2000년간에 펼쳐진 전세계 동서양의 수도나 행정도시 이전 사례를 상고해 보면, 일단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이전이 백지화된 사례가 거의 없다. 만일 정부 뜻대로 원안이 백지화되면 희귀 사례로 남을 것 같다.


권용우 성신여대 교수·도시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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