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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등록금 합의가 남긴 숙제 / 안진걸

등록 2010-01-14 20:52

안진걸  등록금넷 정책간사
안진걸 등록금넷 정책간사
“돈 낸 만큼 치료받을 것인가, 아픈 만큼 치료받을 것인가.”

누구라도 이 질문에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탄식할 것이다.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사태는 그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한국에서도 그런 일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돈 낸 만큼 교육받을 것인가, 공부하고 싶은 만큼 교육받을 것인가? 역시 대부분 공부하고 싶은 만큼 교육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오로지 시장을 맹신하는 이들이 대한민국 교육을, 정부의 상층부를 장악해오면서 교육은 어쩌면 더 냉혹하게 ‘돈 낸 만큼만 교육받는 사회’가 돼버렸다. 4대강 삽질에는 8조5000억원을 쓰면서도 결식학생 급식예산 541억원을 깎으려 했던 이명박 정권의 실세들이 바로 그들이고, 대학생-학부모가 죽어나가도 등록금 문제를 나 몰라라 하며 폭등을 주도·방조해왔던 대학총장단과 교육과학기술부가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세상은 희망을 품는 이들에게 늘 변화로 화답하는 법. 말로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교육·주거·의료 문제를 개인의 능력 문제로 치부하고 교육도 시장이 알아서 한다던 세력들이 그렇게도 반대하던 등록금심의위원회 설치, 적정등록금 산정 기준 마련,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와 등록금 후불제 실시,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 확대 명문화 등이 포함된 법률이 바로 1월14일 새벽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를 통과한 것이다.

앞으로 대학들이 재정을 운용하고 등록금액을 산정할 때 학생 대표 등이 참여하는 등록금 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그를 통해 등록금 책정을 심의·의결해야 하며, 또 학생 1인당 교육비 산정 근거와 등록금 의존율, 가계 평균소득을 계산해 ‘적정 등록금’을 산정해야 한다. 나아가 혹시 등록금을 전년도보다 인상해야 하는 경우는 물가인상률의 1.5배 이상을 넘을 수 없도록 하여 등록금 폭증을 막는 장치를 도입했다. 또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 확대를 명문화하고 목표를 제시하게 만들어 등록금 부담을 완화하고 고등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 남은 과제도 많다. 등록금심의위원회에 대한 시행령에 학부모의 참여도 명시해야 하며 학내 모든 구성원들이 민주적인 논의를 거쳐서 등록금을 심의 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또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은 물가인상률의 150%가 아니라 100% 이내로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가계소득의 일정 범위 내에서만 등록금액을 책정하고 고등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가계소득연계형 등록금액 상한제’가 명시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것은 무척 실망스럽다. 여야가 지난해 12월31일 등록금액 상한제를 도입한다고 합의까지 했지만, 정부와 대학의 강력한 반발로 등록금액 상한제의 명시적 도입이 무산된 것이다.

또한 취업후 상환제 특별법안도 여러 과제를 남겼다. 교과부가 일방적으로 2학기로 연기하려던 것을 막아 애초대로 1학기에 시행되는 것은 잘된 일이지만, 이자율을 현행 5.8%보다 대폭 낮추고, 취업한 뒤 상환이 시작될 때 적용되는 이자 방식을 ‘복리’가 아닌 ‘단리’로 하자는 호소는 수용되지 않아 큰 문제다. 이처럼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성과와 변화는 그것보다 훨씬 크다. 이런 변화를 일구는 데 한국대학생연합, 참교육학부모회, 교수노조, 전교조, 한국진보연대, 청년광장, 흥사단, 대학교육연구소, 민주노총, 다함께, 한국청년연합회(KYC), 민주당의 이종걸 교과위 위원장과 안민석 의원,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의 역할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고마움을 전한다.

안진걸 등록금넷 정책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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