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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세종시, 박정희 그리고 유신헌법 / 김승환

등록 2010-01-19 21:46

김승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승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정파간, 지역간 대립과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일명 ‘세종시법’)은 노무현 정권 당시 150여개의 용역, 100여차례의 토론회, 6차례의 국제설계공모와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거쳐 효력이 발생하였다. 세종시법은 지역 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 해소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법률이다. 이 법은 2007년 2월12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혁신도시건설특별법과도 연동되어 있다. 하나의 법률이 훼손되면 다른 하나의 법률도 마찬가지로 훼손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효율과 속도전 그리고 막개발을 지향하는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 불과 2개월도 못 되는 기간 민관합동위원회의 9차례 회의를 거쳐 세종시법을 폐기처분하는 세종시 수정안이 전격 발표되었다. 정권이 내세우는 명분은 중앙행정부처의 분산으로 인한 행정의 비효율 제거이다. 과천 제2정부청사와 대전 제3정부청사가 초래하는 비효율이 무엇인지도 밝혀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에 대한 언급은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역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위해서 수도권의 과밀을 해소해야 한다는 요청이 언제 그리고 왜 나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법전은 유신헌법이다. 박정희 영구집권체제를 떠받들었던 유신헌법 제120조 제1항은 “…, 지역사회의 균형있는 발전을 기한다”는 선언을 하였다. 이 조항이 1987년 헌법에서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는 표현으로 바뀐다. 물론 모든 영역에서 개개인의 기회균등과 차별 금지,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은 1948년 건국 헌법부터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지역간의 불균형 문제를 중대한 헌법 문제로 보고 그 해결을 국가의 기본 책무로 규정한 것은 유신헌법이 효시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1977년에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발표하였고, 1979년에는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을 만들었다. 과천에 제2정부청사를 건설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도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9년부터이다. 결국 세종시 건설은 노무현 정권에서 비로소 시작한 구상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이 그 단초를 열었던 국책사업이다.

그러면 왜 대통령 박정희는 유신헌법에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명시하면서까지 이 일에 매달렸는가? 그것은 ‘서울공화국’이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 이상비대증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국토와 자원의 균형있는 이용과 발전에 결정적 장애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근대화가 인구의 도시집중과 농촌과 지방의 약화를 초래하는 것은 일정 정도 불가피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정도가 서울(지금에 와서는 경기를 포함한 수도권) 자체의 기능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공화국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권력 획득의 정당성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단기 전시행정의 산물이지만, 박정희가 그 문제점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자세와 구체적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노무현 정권의 지역 균형발전 정책의 뿌리는 박정희 정권의 지역 균형발전 정책에 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내놓은 세종시 수정안은 시대착오적이다. 수도권 과밀이 제공하는 장점은 딱 하나, 그것은 더이상 군사쿠데타가 자행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교통지옥이 탱크의 자유로운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김승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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